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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롯데-두산전이 열린 8일 잠실야구장.
우익수 키를 넘어 펜스를 직격할 듯 했던 라인드라이브 타구. 하지만 딱 하는 소리와 동시에 우익수 김동혁도 출발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펜스를 향해 온 몸을 날렸다. 글러브에 공이 들어갔고, 펜스를 뚫을 듯 강하게 몸을 부딪힌 채 나뒹군 김동혁은 벌떡 일어나 송구까지 이어갔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더 캐치. 김원중을 살리는 순간이었다.
하이라이트 호수비 장면에 두고두고 등장할 명장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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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를 이기는 데 일조해서 기쁘다"고 말한 김동혁은 부모님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뒤에서 항상 고생하시고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앞으로 더 잘하는 선수가 돼서 효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슈퍼캐치 만큼 예사롭지 않은 소감.
야구를 대하는 백업 외야수의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윤동희 황성빈 등 주축 외야수들의 줄부상 속에 잡은 주전 기회.
우연은 없다.공백을 메우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결과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공이 내게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눈을 부릅뜨고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덕분에 동물적 반응을 할 수 있었다. 단 1초만 스타트가 늦었더라도 결코 글러브에 넣을 수 없었던 타구.
김동혁은 이날 공격에서도 빛났다. 8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 3타수1안타 1볼넷 1타점으로 정훈과 함께 하위타선의 기폭제로 활약했다. 1-0으로 앞선 4회 2사 2루에서 두산 선발 곽빈의 153㎞ 초구를 적극 공략해 3루 베이스를 타고 넘는 적시 2루타로 시즌 첫 타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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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혁의 야구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한때 야구를 그만둘 뻔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삼수를 통해 프로에 입단한 선수.
제물포고 졸업반이던 2019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강릉영동대에 진학했지만 2021년 또 한번 지명을 받지 못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2022년 다시 도전한 끝에 롯데에 7라운드 64순위로 지명돼 프로유니폼을 입었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내적갈등 속 힘든 순간마다 가족이 큰 버팀목이 됐다. 드물게 가진 언론 인터뷰 기회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언급하며 각별한 마음을 표현한 이유다.
이런 선수는 힘든 순간에도 엇나감이 없다. 나의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아는 만큼 목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김동혁의 야구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공수주 감각과 빠른 발을 갖춘 수비, 주루 등 쓰임새가 넓은 좌타 외야수. 강한 어깨까지 갖췄다.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만 빼면 4툴 플레이어다. 윤동희 황성빈이 돌아와도 출전 기회를 이어갈 수 있는 유형의 선수. 간절함까지 더해진 만큼 폭풍 성장을 기대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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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고황의 부상 이탈로 자칫 상승세가 꺾일 뻔 했던 거인 군단. 김동혁 장두성 같은 선수들이 있어 다시 반등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특히 8일 경기에서 보여준 김동혁의 몸 사리지 않는 슈퍼캐치는 위태로웠던 롯데야구에 다시 한번 활력을 불어넣은, 시즌 전체의 변곡점이 될 공산이 크다.
롯데 김태형 감독도 경기 후 "부상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도 젊은 야수들이 빈자리를 잘 메워주며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더 중요될 가능성이 큰 선수.
공수주에 걸친 적극성과 파이팅, 간절함까지 김동혁 야구가 롯데 팬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