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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시작" 준비와 본능의 펜스 뚫고 더 캐치, 3수 통해 프로 입문 백업 외야수가 떠올린 얼굴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25-06-10 05:40


"지금부터 시작"  준비와 본능의 펜스 뚫고 더 캐치, 3수 통해 프로 …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롯데와 키움의 경기, 6회말 2사 1루 교체 투입된 롯데 중견수 김동혁이 키움 김혜성의 플라이 타구를 잡아내고 있다. 고척=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4.06.23/

[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롯데-두산전이 열린 8일 잠실야구장.

4-2로 앞선 롯데가 9회말 마무리 김원중을 투입했다. 두산 선두타자 김민석의 안타로 무사 1루.

7회 대타로 나와 감보아로부터 중전안타를 뽑아냈던 김인태 타석. 타격감이 유독 좋았다. 초구부터 146㎞ 속구를 강하게 당겼다.

우익수 키를 넘어 펜스를 직격할 듯 했던 라인드라이브 타구. 하지만 딱 하는 소리와 동시에 우익수 김동혁도 출발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펜스를 향해 온 몸을 날렸다. 글러브에 공이 들어갔고, 펜스를 뚫을 듯 강하게 몸을 부딪힌 채 나뒹군 김동혁은 벌떡 일어나 송구까지 이어갔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더 캐치. 김원중을 살리는 순간이었다.

하이라이트 호수비 장면에 두고두고 등장할 명장면의 탄생.
"지금부터 시작"  준비와 본능의 펜스 뚫고 더 캐치, 3수 통해 프로 …
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롯데-키움전. 8회초 2사 1루 이호준 타석. 1루 대주자 김동혁이 2루 도루 성공 후 공이 빠지자 3루로 달리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5.1/
주인공 김동혁(25)은 경기 후 구단을 통해 잔잔한 감동의 인터뷰를 전했다.

"부상선수들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많이 준비하고 노력했다"는 그는 "항상 공이 외야 쪽으로 온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이 맞자마자 타이밍 잘 맞아서 최단 시간 공을 쫓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뒤에 펜스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고 집중했던 부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 했다.

"오늘 경기를 이기는 데 일조해서 기쁘다"고 말한 김동혁은 부모님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뒤에서 항상 고생하시고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앞으로 더 잘하는 선수가 돼서 효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슈퍼캐치 만큼 예사롭지 않은 소감.


야구를 대하는 백업 외야수의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윤동희 황성빈 등 주축 외야수들의 줄부상 속에 잡은 주전 기회.

우연은 없다.공백을 메우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결과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공이 내게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눈을 부릅뜨고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덕분에 동물적 반응을 할 수 있었다. 단 1초만 스타트가 늦었더라도 결코 글러브에 넣을 수 없었던 타구.

김동혁은 이날 공격에서도 빛났다. 8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 3타수1안타 1볼넷 1타점으로 정훈과 함께 하위타선의 기폭제로 활약했다. 1-0으로 앞선 4회 2사 2루에서 두산 선발 곽빈의 153㎞ 초구를 적극 공략해 3루 베이스를 타고 넘는 적시 2루타로 시즌 첫 타점을 올렸다.
"지금부터 시작"  준비와 본능의 펜스 뚫고 더 캐치, 3수 통해 프로 …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롯데의 경기. 4회초 2사 2루. 1타점 2루타를 날린 롯데 김동혁. 잠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6.08/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간절함. 끓어오르는 에너지의 원천은 가족에게서 나온다.

김동혁의 야구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한때 야구를 그만둘 뻔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삼수를 통해 프로에 입단한 선수.

제물포고 졸업반이던 2019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강릉영동대에 진학했지만 2021년 또 한번 지명을 받지 못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2022년 다시 도전한 끝에 롯데에 7라운드 64순위로 지명돼 프로유니폼을 입었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내적갈등 속 힘든 순간마다 가족이 큰 버팀목이 됐다. 드물게 가진 언론 인터뷰 기회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언급하며 각별한 마음을 표현한 이유다.

이런 선수는 힘든 순간에도 엇나감이 없다. 나의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아는 만큼 목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김동혁의 야구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공수주 감각과 빠른 발을 갖춘 수비, 주루 등 쓰임새가 넓은 좌타 외야수. 강한 어깨까지 갖췄다.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만 빼면 4툴 플레이어다. 윤동희 황성빈이 돌아와도 출전 기회를 이어갈 수 있는 유형의 선수. 간절함까지 더해진 만큼 폭풍 성장을 기대해 볼만 하다.


"지금부터 시작"  준비와 본능의 펜스 뚫고 더 캐치, 3수 통해 프로 …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롯데의 경기. 4회초 2사 2루. 1타점 2루타를 날린 롯데 김동혁. 잠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6.08/
김동혁은 올시즌 36경기에서 17타수5안타(0.294)에 8볼넷, 8도루를 기록중이다. 눈 야구가 되는 선수로 출루율이 0.520에 달한다. 최근 주전으로 나서는 4경기 연속 볼넷을 기록중이다.

윤나고황의 부상 이탈로 자칫 상승세가 꺾일 뻔 했던 거인 군단. 김동혁 장두성 같은 선수들이 있어 다시 반등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특히 8일 경기에서 보여준 김동혁의 몸 사리지 않는 슈퍼캐치는 위태로웠던 롯데야구에 다시 한번 활력을 불어넣은, 시즌 전체의 변곡점이 될 공산이 크다.

롯데 김태형 감독도 경기 후 "부상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도 젊은 야수들이 빈자리를 잘 메워주며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더 중요될 가능성이 큰 선수.

공수주에 걸친 적극성과 파이팅, 간절함까지 김동혁 야구가 롯데 팬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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