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KBO 리그에서 포수라는 포지션은 오랫동안 '경험과 관록'의 전유물이었다. 실제로 2011년 이래 포수 골든글러브는 단 한두 차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양강' 양의지(두산 베어스)와 강민호(삼성 라이온즈)가 독식해 온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2026시즌, 마침내 KBO 리그 안방의 판도가 통째로 뒤바뀌고 있다. 거대한 세대교체의 바람과 함께 젊은 포수들이 리그를 지배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최근 야구계 최고의 화두는 단연 25세 이하 젊은 포수들의 동반 대폭발이다. 한화 이글스의 거포 신성 허인서(23)와 기아 타이거즈의 히트 상품 한준수(27)를 필두로 손성빈(롯데), 김건희(키움), 조형우(SSG), 김도환(삼성) 등 젊은 마스크들이 단순한 백업을 넘어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처럼 젊은 포수들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결정적으로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이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과거 포수에게 요구되던 가장 큰 덕목인 '프레이밍(미트질)'의 영역이 ABS 시대가 되면서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여기에 구단마다 정밀하고 디테일한 전력 분석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면서, 벤치와 배터리 코치의 사인이 직접 나가거나 사전에 짜인 데이터대로만 투수를 리드하면 되는 환경이 조성됐다. 옛날의 경험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제 구단들이 포수를 선택하는 첫 번째 트렌드는 '강한 어깨(송구)'와 '타석에서의 힘(타격)'이다. 수비에서의 복잡한 머리싸움 부담이 덜어지자, 젊은 포수들은 본연의 피지컬과 장점을 극대화하며 안방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현재 춘추전국시대의 선두권을 달리는 투톱은 허인서와 한준수다. 두 선수는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포수 중 리그 최고의 OPS를 다투며 골든글러브와 신인왕 전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화 허인서는 5월 한 달간 타율 3할7푼7리 7홈런 21타점 OPS 1.167을 기록하며 한화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중심에 섰다. 현재 시즌 9홈런으로 포수 홈런 1위를 질주 중이다. 극적인 홈런을 치고도 표정 변화가 없는 특유의 무표정 멘탈은 "무서운 대형 포수가 될 자질"이라는 평을 듣는다.
신인왕을 차지했던 2010년의 양의지 페이스를 뛰어넘는 장타 임팩트다.
허인서가 화려한 불꽃이라면 기아 한준수는 '영리함'과 '꾸준함'으로 종합 가치에서 앞서 나간다. 현재 포수 WAR 1위(1.61)는 허인서(1.38)가 아닌 한준수다.
한준수의 무기는 타율(3할)보다 높은 3할6푼4리의 출루율이다. 뛰어난 선구안으로 벌써 22개의 볼넷을 골라내 박동원과 함께 포수 부문 공동 1위다. 찬스마다 터지는 3할2푼의 득점권 타율까지 갖춰 기아 타선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두 선수 외에도 각 팀의 차세대 안방마님들이 보여주는 색깔은 뚜렷하다.
롯데 손성빈은 투수들이 가장 던지고 싶어 하는 포수 1위다. 앉아있는 자세와 타겟 설정 집중력이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2루 송구 구속 137㎞를 찍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견(강한 어깨)'이 최대 무기다. 다만 롯데 투수진의 포크볼 폭투를 막아내야 하는 블로킹과 2할대 초반의 타격은 보완 과제다.
키움 김건희는 주전 포수 중 가장 어린 2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해 다섯 명의 유망주 중 가장 많은 경기(48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32타수 무안타 슬럼프 속에서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묵묵함과 강단 있는 리더십을 보여줘 '차세대 강민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극찬을 받는다.
SSG 조형우는 강한 어깨와 준수한 타격 잠재력을 갖춰 이숭용 감독이 복귀 즉시 1군 기용을 예고한 자원이다. 현재 부상 탈선이 아쉽지만 김건희와 더불어 '한국에 없던 대형 피지컬 포수'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올 시즌 양의지는 타율 2할2푼7리 5홈런으로 부진에 빠졌고, 강민호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2군을 다녀오는 등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모양새다. 2011년 이후 15년 가까이 KBO 안방을 양분했던 두 거인의 지배력이 마침내 균열을 일으킨 셈이다. 이 춘추전국시대의 치열한 전쟁 끝에 제2의 양의지, 제2의 강민호 왕관을 쓸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 흥미진진하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