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메디컬 사극'이라길래 '옥탑방 왕세자' '인현왕후의 남자' 같은 말랑말랑한 판타지 드라마일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통 의학드라마이면서 정통 사극이 아닌가. MBC 주말극 '닥터진' 얘기다.
2012년을 살고 있던 천재외과 의사 진혁(송승헌)이 1860년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판타지'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의학'과 '역사'로 외연과 깊이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가미했을 뿐, 상당 부분 실제 역사와 역사적 허구에 기반해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조선시대에 떨어진 진혁은 머리에 자상을 입은 홍영휘(진이한), 뇌출혈을 일으킨 좌의정 김병희(김응수)를 뇌수술로 살렸다. 괴질이 돌아 백성들이 속절없이 죽어가자, 괴질이 곧 콜레라임을 알아차리고 수액을 만들어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자신도 괴질에 걸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후엔 의사로서 소명의식을 깨닫는 내용도 그려졌다. 현대 의술을 갖췄지만 의료기기가 없었던 터라 당시의 기구들을 활용해 수술을 하는 장면도 긴박감과 재미를 더했다. 여기까지 보면 의학드라마다.
괴질의 위세가 점점 누그러져갈 즈음 백성을 괴질만도 못하게 여긴 조정 관료들은 토막촌에 불을 지른다. 망연자실한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권력가들의 위선을 짚어낸 '닥터진'은 점점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범수)의 둘째 아들이자 훗날 고종이 되는 명복이 괴질에 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혁이 명복을 살려내지 못하면 역사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닥터진'은 서양 상인과의 관계를 가진 후 매독에 걸린 기생 매향이 등장하면서 조선 개화기로 배경을 또 한번 넓혔다. 서양 상인과 금괴를 거래하는 안동김씨 세도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시대적 분위기도 놓치지 않았다. 진혁은 여기서 매독 치료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던 페니실린을 만들기 위해 푸른곰팡이로 자가제조하는 법을 떠올리지만, 활인서의 의원이 "이 약만 있으면 매독도 다른 병도 다 고칠 수 있고, 조선은 물론 청국에도 금방 퍼져나갈 것"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역사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곧 역사의 흐름과 일치했던 고종의 경우와 달리, 이번엔 진혁의 의술과 역사가 정면으로 배치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허무맹랑했을 이야기다.
제작사에 따르면, '닥터진'의 대본은 정통사극 못지않게 철저한 고증을 거친다. 괴질이나 매독도 당시엔 병명과 치료법을 몰랐을 뿐 비슷한 시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질병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대학교수들에게 대본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감수를 거치고 있다. 진혁의 수술 장면도 현장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하응이나 몇몇 인물을 제외하곤 허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후 흥선대원군과 진혁 사이의 정치적 대립을 통해 '닥터진'이 조명할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된 개화기 조선의 내부 갈등이다. 이 관계자는 "역사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흘러간다는 사실 또한 진혁의 활약을 통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판타지이면서 의학드라마이고 동시에 사극이기도 한 '닥터진'의 세 마리 토끼 잡기가 갈수록 흥미로워지는 이유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