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방송에서 타방송사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실수로라도 타방송사의 드라마나 예능 이야기를 했다면 당연히 편집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작가들은 인기작을 패러디하는 것이 마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일인양 기피했다. 하지만 이제 패러디의 장벽만큼은 완벽하게 허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예능은 물론 드라마에서조차 작품을 뛰어 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KBS2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천방 커플' 천재용(이희준)-방이숙(조윤희)은 지난 달 30일 방송한 '넝굴당'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명장면 '밥 먹을래, 같이 죽을래'를 패러디했다. 이희준은 극중 소지섭처럼 가발에 머리띠까지 하고 이 모습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폭소케했다. 또 '시크릿가든'의 거품 키스를 시도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넝굴당'은 예전에도 SBS '짝'을 패러디한 프로그램 '짝궁'에 엄순애(양희경)가 출연하는 장면을 그려 시청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날 SBS 주말극 '신사의 품격'에서도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장면이 등장했다. 18년전 장동건을 신인 배우에서 톱스타로 올려놨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언급됐기 때문이다. 캠핑에서 20대 남성들과 농구대결을 벌이게된 김도진(장동건)은 "내가 농구의 대명사였지"라며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체력 열세로 패하자 "94년에 마지막 승부를 가렸지"라고 핑계를 댔다. 또 농구 장면에서는 '마지막 승부'의 OST까지 등장했다. 이는 1994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마지막 승부'를 떠올리게 한 것. 당시 장동건은 손지창 심은하 이상아 등과 주인공으로 나섰고 심은하와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제작사는 "장동건이 드라마 '마지막 승부' 때처럼 농구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라며 "빡빡한 스케줄로 체력적인 부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이 유쾌하고 명랑하게 농구 경기 장면을 완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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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KBS2 월화극 '빅'에서는 시청률 40%를 넘긴 MBC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코믹하게 패러디하기도 했다. 지난 달 25일 방송에서 장마리(배수지)는 무녀에게 강경준(신원호)과 서윤재(공유)의 이름을 적어내며 "두 사람의 영혼을 바꿔달라" 부탁한다. 이에 무녀는 "흑주술엔 액받이 총각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마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 온 길충식(백성현)을 액받이로 건넸다. 이어 받은 부적을 길다란(이민정)에게 전해주며 흑주술을 진지하게 믿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해품달'의 OST까지 흘러나왔다.
이같이 방송사는 물론 작품, 장르를 불문한 패러디는 최근에는 '대세'를 넘어 '트렌드'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신사의 품격'과 SBS 수목극 '유령'은 극중 배역의 이름에 작가의 이름을 서로 차용하는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마니아를 자처하는 회사원 이희영 씨(여·32)는 "요즘 드라마에서 예전에 보던 드라마 이야기나 장면이 등장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너무 많이 나오면 문제가 있겠지만 요즘같이 잠깐씩 등장하는 것은 잔재미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인기작의 패러디는 조금만 변주를 줘도 시청자들에게 큰 재미를 줄 수 있어 작가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너무 남발하면 자칫 드라마가 너무 쉽게 웃음을 주려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패러디의 등장이 드라마족(族)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