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코드 사라진 안방극장, 장르 드라마가 대세

최종수정 2012-07-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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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BS

출생의 비밀, 불륜, 우연의 남발, 비상식적인 캐릭터, 억지스러운 선악구도가 난무하던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어느샌가 안방극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탄탄한 스토리와 입체적인 캐릭터를 앞세워 '드라마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장르 드라마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만 살펴봐도 시대극, 로맨틱 코미디, 추리극, 수사극, 의학드라마, 사극, 판타지, 가족드라마 등 소재와 장르가 다양하고 풍성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의 '골라 보는 재미'도 어느 때보다 쏠쏠하다.

지상파 3사의 월화극은 장르 드라마의 격전지다. 방송 기간 내내 압도적인 1위를 놓치지 않았던 MBC '빛과 그림자'는 70~80년대 쇼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묵직한 시대극이었고, 시청자들의 감탄 어린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 SBS '추적자 THE CHASER'는 추격, 액션, 수사, 추리 등이 버무려진 한국형 느와르 장르를 개척해 '제2의 모래시계'라 불렸다. '빛과 그림자'의 후속 '골든타임'은 정통 의학드라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기존의 의학드라마와는 첫 걸음부터 다르다. 외과 수술 장면을 긴박한 편집으로 실감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열악한 지방 의료 현실, 미미한 외상환자 치료 시스템 등 의학계의 어두운 현실까지도 짚어낸다. 홍자매 작가의 KBS2 '빅'은 비교적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이지만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설정을 가미했다. 영혼이 원래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면 극은 새드엔딩이 될 가능성이 높아, 로맨틱 코미디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해피엔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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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 차례나 '대전'을 벌였던 수목극에서도 어느 하나 뒤쳐지는 작품이 없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형 영웅 각시탈의 활약을 그린 KBS2 '각시탈'은 사극이면서 히어로물이고, SBS '유령'은 범죄수사극이다. MBC '아이두 아이두'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쓴 여성형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성적표에서는 순위가 갈렸지만, 화제성이나 시청자들의 지지도 면에선 쉽게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서로 장르가 완전히 다른데다 각자의 개성과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MBC 주말극 '닥터진'이 SBS '신사의 품격'에 비해 시청률에선 뒤쳐져 있음에도 언론과 시청자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860년대 조선으로 거슬러 온 현대 외과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닥터진'은 하나의 장르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의술을 펼칠 때는 의학드라마이지만, 흥선대원군과 안동김씨 세력의 권력 대결이 펼쳐지는 구한말로 눈을 돌리면 정통 정치사극이다. 또한 시간여행의 비밀이 저변에 깔려 있는 판타지극이면서 미스터리극이기도 하다. 앞으로 고종 왕위 등극, 천주교 박해, 문물 개방 등 펼쳐놓을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거기에다 등장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 미래가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보여줄 예정이다. 어디에 촛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다층적인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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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가족드라마에 트렌디 드라마의 요소를 배합했다. 그래서 며느리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가족의 갈등이 봉합되고 화해를 이루던 기존의 가족드라마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시월드' 속 며느리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월드'가 지나치게 가부장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며느리 차윤희(김남주)는 가족간의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가는 지혜를 보여주고,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재치 있는 패러디와 코믹 에피소드, 세련된 연출이 버무려져 가족드라마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장르 드라마의 한결 같은 특징은 러브라인이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사의 품격'이나 '빅' 정도만 로맨스가 주제로 다뤄질 뿐, 다른 드라마들에선 흔하디 흔한 키스신조차 별로 나오지 않는다. 자극적인 설정에 기대지 않고도 장르 드라마의 매력을 보여줄 이야깃거리가 그만큼 풍성하다는 얘기다. 로맨스가 아쉽다는 시청자들의 얘기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멜로물이 요즘처럼 작품 편수나 인기도 면에서 힘을 못 썼던 적이 있었나 의아할 정도다.

과거처럼 시청률에서 크게 뒤쳐지는 작품이 없다는 것도 요즘 드라마들의 장르성과 질적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보여준다. 시청률 40%의 벽을 깬 '넝쿨째 굴러온 당신', 20%대 '신사의 품격'과 '추적자'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10% 초중반이거나 아무리 낮아도 8~9%대다. 인기를 고르게 나눠가졌다는 뜻이다.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의 가세로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경쟁, 드라마 제작자들의 끊임없는 다양성 실험, 시청자들의 까다로운 안목, 이들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막장' 대신 '명품'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장르 드라마들 덕분에 안방극장도 '풍년'을 맞이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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