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로 대표되던 안방극장 노처녀들이 달라졌다. 연애에 서툴러 남자에게 번번이 차이기만 하고 집안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던 것도 이젠 옛일이다. 일에선 당당하고 사랑할 땐 화끈한 '골드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과 깊이 교감하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허물고 있다.
19일 종영한 MBC '아이두 아이두'는 주인공 황지안(김선아)을 통해 우리 사회 여성들의 현실을 내밀하게 들여다봤다. 황지안은 회사에서 차기 사장직 물망에 올랐을 만큼 성공한 구두 디자이너임에도 하룻밤 실수로 아이를 임신한 후엔 노골적인 비아냥과 불편한 시선에 시달렸다. 황지안이 당당하게 싱글맘을 선택하고 나이 어린 신입사원 박태강(이장우)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선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직장 여성들의 육아 문제, 직장 내 성차별, 미혼모, 싱글맘, 낙태 등 여성을 옭아매는 현실적 문제들이 그려졌다. 만삭의 몸으로도 사장직을 소화해내는 황지안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이 드라마의 해법은 여성의 문제가 남자의 구원에 의해 해결되던 기존의 방식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내 이름의 김삼순'을 통해 본의 아니게 '노처녀의 아이콘'이 된 김선아는 '아이두 아이두'에서 또 한번 진일보한 여성상을 보여줬다. 도발적인 주제에 비해 다소 밋밋한 전개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멋진 언니' 황지안만큼은 강한 존재감을 새겼다.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의 서른세살 음악감독 주열매(정유미)는 여성들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 윤석현(이진욱)과 12년 동안 5번 연애하고 5번 헤어진 사이다. 윤석현에게 "가끔 내 방에서 자고 갈래?"라고 직선적으로 말할 정도로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사랑에 열정적이다. 주열매의 대사들은 '어록'이라 불릴 정도로 화제다. "넌 그 동그라미 안에서 나를 밀어냈어. 나는 네가 날 밀어낼 때마다 싸워도 보고 매달려도 보고 기다려도 봤어. 이제는 그렇게 안 살거야. 진짜 끝이야. 이제 넌 좋겠다. 그 동그라미 안에서 혼자 남아서"라는 대사는 연인 사이의 갈등상황을 회피하려는 남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부럽지 않은 동갑내기 세 친구 주열매, 선재경(김지우), 우지희(강예솔)의 솔직한 입담도 압권이다. 자질구레한 연애사부터 속궁합 얘기까지 거침이 없다. 성(性)과 사랑에 자유로워진 여성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펼쳐지면서 마니아 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7년 시작돼 벌써 열번째 시즌이 방송 중인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김현숙)는 브라운관 밖 현실과 밀착도가 가장 높다. 30대 중반 영애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연애 이야기와 노처녀의 서러움,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직장생활 이야기를 버무렸다. 영애 같은 뚱뚱한 노처녀에 대한 편견은, 여자에겐 외모도 경쟁력이 되는 세태를 은근하게 비튼다. 사랑에 실패했던 다수의 경험을 갖고 있는 영애가 시즌 10에 접어든 후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하고 연애에서도 성공하는가 했더니, 얼마 전엔 작은 오해들로 인해 연인과 이별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영애씨'로 대변되는 30대 노처녀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막돼먹었다'는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막돼먹지 않으면 일과 사랑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드라마 속 영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여성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은 '막돼먹은 영애씨'가 장수하는 원동력이다.
언젠가부터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골드미스들은 이처럼 '로맨스의 품격'부터 남다르다. 남자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헛된 낭만이나 환상에 기대지도 않는다. 대신 현실과 접촉면을 넓힘으로써 이야기의 동력을 얻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 드라마에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을 자주 볼 수 있다. 로맨스에서도 여성이 능동적이고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이면서, 30대 여성들이 안방극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과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