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배우 고소영이 조용한 선방을 이어가고 있다.
고소영은 KBS2 월화극 '완벽한 아내'를 통해 10년 간의 공백을 깨고 컴백을 알렸다. 톱스타의 화려한 귀환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고소영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벽한 아내'가 4~5%대 시청률에 머물며 월화극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조여정이 연기하는 사이코 스토커 이은희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고소영의 심재복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듯 했다.
그러나 연기 자체를 놓고 봤을 때 고소영의 표현력은 분명 기대 이상이다.
고소영의 심재복은 튀기 어려운 캐릭터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꾸려가지만 남편의 불륜에 괴로워하고, 결국 이혼을 택하고도 아이 아빠라는 존재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위기의 주부다. 반면 이은희는 우아하고 고상한 포장 뒤에 섬뜩한 정신병 환자의 본성을 감춘 사이코다. 색으로 치자면 심재복은 무채색에, 이은희는 강렬한 원색에 가까운 캐릭터다.
그래서 심재복은 이은희에 비해 주목받기 어렵고, 오히려 강한 캐릭터색에 묻힐 위험이 높다. 하지만 심재복을 연기하는 고소영의 완급 조절은 탁월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감정 연기와 디테일한 표정 연기,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로 캐릭터에 현실감을 심어준다. 메이크업조차 거의 하지 않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동네에서 한두번은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주부 그 자체다. 그러다 조여정과 마주했을때는 극한까지 감정선을 끌어올린다. 격앙된 얼굴과 애써 화를 누르는 담담한 대사 처리로 조여정의 이은희와 맞선다. 그의 절제된 연기는 이은희의 사이코적인 모습과 대비되며 캐릭터의 극적 성향을 부각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시청자는 이은희의 미스테리가 하나씩 풀리고, 그의 숨겨진 본능이 드러날 때마다 소름돋는 반전의 묘미에 전율할 수 있었다.
10일 방송에서는 이러한 고소영의 매력이 그대로 살아났다.
심재복은 "얼굴은 바뀌었는데 사람은 바뀌지 않나봐. 문은경. 한 남자 구정희를 사랑했지. 지독하게. 얼굴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어서 애들 아빠가 은희 씨를 못 알아본 것 같은데 그때 그 스토커가 은희 씨라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구정희도 알아야해. 애들 아빠 이대로 벼랑으로 구르게 할 수 없어. 우리 셋이 차분히 얘기하고 다 정리하자"며 이은희를 압박했다.
충격적인 비밀에도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자 하는 심재복의 모습과 사시나무 떨듯하며 "살려달라"고 오열하는 이은희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4분 13초 동안 이어진 폭로전을 쫀쫀하게 채웠다.
영화 '비트'를 시작으로 우월한 비주얼을 뽐내며 톱스타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 탓에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고소영이다. 그러나 이은희 구정희(윤상현) 등 뚜렷한 반전 캐릭터 사이에서 섬세한 완급 조절로 극의 무게를 잡아가는 고소영의 내공은 칭찬해줄만하다. 시청자도 그의 연기에 호응을 보낸다. '생각외로 연기를 잘해서 놀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비록 '완벽한 아내'가 시청률 면에서는 부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고소영은 이 작품을 통해 '톱스타' 아닌 '배우'의 타이틀을 새로 달게 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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