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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양지윤 기자]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목소리를 내어 줄 수 있다는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내 발 건강보다 소중한 게 하이힐이다. 하이힐은 단순 패션 소품을 넘어 여성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이 됐고, 여성의 당당함은 그 뾰족한 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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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다 가져가도 내 마놀로 블라닉 만큼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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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부모는 마놀로 블라닉의 재능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마놀로는 부모의 뜻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 법과 정치를 공부하게 된다. 그런다고 끊임 없이 용솟음 치는 재능을 억제하는 게 가능했을까? 아마 손이 근질근질 했을 거다. 그는 전공을 문학과 건축으로 바꿨지만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졸업 후 루브르 아트 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영화 같은 이야기는 뉴욕에서 펼쳐진다. 마놀로는 1970년 뉴욕을 여행하던 중 미국 최초의 보그 편집장이었던 다이아나 브릴랜드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마놀로의 포트폴리오를 유심히 살펴보며 "아이디어를 발에 집중하고 구두를 만들어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라. 신발을 생각하지 말고 작품을 생각하라" 등의 충고를 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인 매거진의 편집장을 만나는 일은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 그 후 마놀로 블라닉은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의 구두 컬렉션을 제작하며 커리어를 쌓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오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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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제품은 섹시한 실루엣이 으뜸가는 매력이다. 아찔하게 높은 굽과 화려한 장식 역시 돋보이는 요소다. 높은 굽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착용감이 편해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와 세련된 분위기로 헐리우드 정상급 여배우들의 '최애' 브랜드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은 사실 남성화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했다. 창작의 한계를 느낀 그는 여성화로 중심을 옮겼고, 그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마놀로 블라닉 여성화만이 줄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을 위해 그는 완전히 올인했다.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건, 그것에 지쳐도 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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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 스타 리한나는 마놀로 블라닉과 함께 '데님 디저트(Denim Desserts)'란 이름의 컬렉션을 완성했다. 데님 위에 화려한 시퀸 장식을 뒤덮어 리한나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내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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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70대 노인인 마놀로 블라닉에게 파격의 상징 베트멍과의 협업은 엄청난 모험이자 자신과의 싸움이지 않았을까? 마놀로 블라닉은 이렇게 말했다.
"걔네들이 말하는 걸 들었을 때 그냥 짜릿한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너무 망가뜨렸나, 혹은 너무 DIY 같이 보이나 싶은 제품 일수록 뎀나가 더 좋아했어요."
짜릿했다니, 모험은 맞는 것 같은데 확실히 자신과의 싸움은 아니었나 보다. 오히려 마놀로가 뎀나보다 더 그 상황을 즐긴 것 같다. 역시 대가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다더니, 그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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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산과정에도 직접 손때를 묻힌다. 구두틀 제작과 굽 가공 작업까지 손수 할 정도로 철저한 공예성을 고집한다. 자신이 의도한 디자인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생산 전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아주 유명하다. 백발의 노인이 직접 만들어주는 최고의 하이힐이니, 몸 둘 바를 모르고 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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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iy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