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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TV는 사랑을 싣고' 윤희정이 가수 인생을 열게 해준 오용한 씨를 만났다.
윤희정은 우리나라 최초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승하며 데뷔했다. 당시 우승자에겐 KBS 전속 가수가 될 기회를 줬는데, 윤희정은 1971년 10월 우승한 후 그해 말 최초로 그랑프리까지 수상했다.
윤희정이 찾는 사람도 이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었다. 윤희정은 자신을 가수로 데뷔 시켜준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 PD인 오용한 씨를 찾고 싶다고. 윤희정은 오용한 씨에 대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며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음악 인생에서 처음 만났다"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가수의 길을 걷게 한 오용한 씨를 만나고 싶어했다. KBS PD 출신이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윤희정은 "갑자기 없어졌다. 이상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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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대모' 윤희정은 학창시절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음악을 못할 뻔 했다. 윤희정이 자신의 음악 재능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오용한 씨에게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열심히 찾는 이유였다. 엄격했던 부모님은 윤희정이 학업에 집중하길 원했다고. 윤희정은 "(부모님이) 기타 들고 다니고 노래만 하니까 동생들한테 본보기가 안 된다 생각했나보다. 아버지가 아끼는 기타까지 부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랑프리 수상 후 가족들의 분위기가 달라지며 윤희정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윤희정은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그랑프리를 수상하니까 20인치 TV에 여러 상품들이 가득했다"며 "같은해 오빠가 사법고시를 합격했는데 오빠의 사법고시 합격 소식이 묻혔다"며 웃었다.
윤희정을 위해 추적팀이 나섰다. 추적팀은 오용한 씨가 82년도에 KBS를 퇴사,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스턴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용한 씨는 건강 문제로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고. 또 오용한 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목회 일을 더 이상하지 않는다고 해 윤희정씨를 걱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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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한 씨는 "다른 사람이면 안 나왔을 거다. (윤희정이) 54000:1이니까"라며 "군계일학이었다. 특출났다"고 떠올렸다. 이에 윤희정은 "우리 집에선 전부 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 그랬던 나를 인정해준 사람"이라며 눈물을 보였고 오용한 씨는 "집에서 노래하는 걸 반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수 되는 길이 어렵겠구나 싶었다. 고생했겠지만 지금 큰 영광을 받고 있지 않냐. 본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겠냐"고 윤희정을 다독였다.
윤희정은 "내 평생 잘한 일이다. 선생님을 만나니 어마어마한 걸 찾았다"며 오용한 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wjle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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