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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후배 아닌 친구 변요한, 공동수상 원했다"…설경구, '자산어보'로 19년만 들어올린 청룡 트로피('청룡영화상')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21-12-23 13:39 | 최종수정 2022-01-01 10:33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설경구가 22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12.22/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자산어보', '박하사탕' 이후에 만난 나의 새로운 인생작."

설경구(54)를 언제나 따라 다니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라는 타이틀의 진정성은 꽉꽉 들어찬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코믹 오락물, 서스펜스 넘치는 스릴러, 절절한 드라마, 누와르부터 액션까지 모든 장르에 착 달라붙어 버리는 설경구의 변주에는 끝이 없다. 캐릭터의 리얼함을 위해 100kg을 증량하거나 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다. 노인 연기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올해 초 개봉한 '자산어보'(이준익 감독)는 그런 설경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 설경구의 첫 본격 사극 작품이자 첫 흑백 영화였다. 최근 대형 상업 영화에서 강렬하면서도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던 그가 오랜만에 어깨에 힘을 빼고 택한 저예산 작품이기도 했다. 설경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형 상업 영화 사나리오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하던 영화 '자산어보'에 마음을 빼앗겼고 출연을 주저하지 않았다.

설경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제42회 청룡영화상이 증명했다. 지난 2000년과 2002년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이창동 감독)로 청룡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설경구는 '자산어보'를 통해 무려 19년만에 다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수상 직후 무대 위에서 "자산 같은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설경구를 한달만에 다시 만났다. 청룡영화상 이후에도 차기작 '킹메이커' 홍보 활동에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킹메이커' 개봉이 연기되면서 이제야 조금 청룡영화상을 다시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입을 열었다.

설경구는 무엇보다 미처 수상 소감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류승룡, 조우진, 최원영 씨등 특별출연해 주신 분들의 이름을 무대 위에서 다 언급했으면서, 정작 우리 흑산도 주민들의 이름은 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극중 아내였던 이정은 씨를 비롯해 민도희 씨, 차순배 씨에게 미처 감사의 말을 못했었는데 이렇게라도 말 할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다. 그들에게 여러분 덕에 우리가 '자산어보'가 만들어 질 수 있었노라고 꼭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청룡영화상 외에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 대한민국대학영화제, 황금촬영상, 한국제작가협회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올해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쓴 설경구. 그는 '자산어보'를 통해 이토록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6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설경구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여의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1.11.26/
"사실 연기를 하면서도 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가가 있고, 어떤 수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아무 생각 없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있다. 사실 '자산어보'가 나에게는 후자였던 작품이다. '자산어보'로 상을 받을 수 있을거라든지, 큰 수익을 낼거라는 식의 사심을 전혀 갖지 못하고 시작했다. '자산어보'는 개런티도 충분히 줄 수 없는 저예산 영화이였기 때문에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출연 배우들이 양보하면서 완성했다. 촬영장이었던 신안 비금도는 오고 가는데만 13시간씩 걸리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신을 특별 출연을 위해 그곳 까지 찾아주는 모든 배우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 섬에서 모든 배우들과 함께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자산어보'는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변요한이라는 멋진 후배, 아닌 멋진 친구를 얻었다."

이날 설경구는 인터뷰 내내 '자산어보'에서 스승과 제자로 호흡을 맞추고 함께 청룡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변요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사실 청룡에서 상을 안받은지 꽤 오래 됐다. '공공의 적'으로 상을 받고 19년이나 됐다. 청룡이라는 멋진 상. 솔직히 왜 나라고 받고 싶지 않았겠냐. 그래서 사실 요한이와 함께 받고 싶었다. 예전에 청룡영화상에서 '라디오스타'로 안성기·박중훈 선배님이 함께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지 않는가. 나와 요한이가 그 뒤를 잇고 싶었다. 하지만 한 명만 받아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요한이가 되길 바랐다. 사실 청룡 전에 나는 영평상과 황금촬영상, 대학생분들이 주는 의미있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래서 청룡에서만은 요한이가 받길 바랐다. 청룡에서 무대에서 요한이의 얼굴을 딱 보는데, 너무 미안하더라. 수상소감을 하다가 요한이의 눈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42회 청룡영화상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설경구가 변요한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여의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1.11.26/

제4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6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배우 설경구가 남우주연상 수상자 호명을 받고 변요한과 기뻐하고 있다. 여의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11.26/
설경구는 올해 청룡의 남우주연상은 자신이 받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변요한의 주연상 수상을 확신했다. 설경구는 "'자산어보'는 요한이의 대표작이자 앞으로 변요한이 보여줄 연기의 새로운 스타트가 된 작품이라 확신한다. 나에게 있어 '박하사탕'(이창동 감독) 같은 작품이 요한이에게 '자산어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산어보' 이후로 요한이가 보여줄 연기가 나 또한 정말 많이 기대가된다"고 힘줘 말했다.

실관람객과 평단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개봉해 많은 관객수를 모으지 못한 '자산어보'. 설경구는 자신의 수상으로 인해 '자산어보'라는 작품이 다시금 재조명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고 전했다. "'자산어보'가 처음에는 접근이 쉬운 영화는 아니다. 사극인데다가 흑백 영화이니 어둡고 어려운 작품일 거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정약용도 아니고 정약전이라는 다소 주목 받지 못했던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또한 생소했을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이 시나리오를 받고는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 물고기 공부하는 책인 자산어보?'라고 의아해 했다. 하지만 대본을 보다가 눈물이 나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은, 정말 깊은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많은 관객이 극장서 영화를 보지 못하셨지만, 영화를 본 관객중에서 이 영화가 별로였다고 말하는 관객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자산어보'는 작지만 힘이 있는 영화다. 자칭타칭 설경구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박하사탕'과 견줘도 될 정도의 나의 새로운 인생작이라고 생각한다. 늦게라도 많은 분들이 꼭 봐주셨으면 하는 작품이다."


제42회 청룡영화상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문소리와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설경구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여의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1.11.26/

올해 청룡영화상 주연상 수상자 설경구와 문소리는 어느 해 보다 더 영화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영화 '오아시스'로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와 문소리('세자매')가 나란히 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로 잊지 못할 명연기를 선보였던 설경구와 문소리는 청룡영화상 백스테이지에서도 수상 이후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서로의 수상을 축하하기도 했다. 문소리의 이야기가 나오자 설경구는 "소리가 받아서 너무 좋았다. 내 수상 다음에 소리 수상이 이어졌는데, 소리가 받는걸 듣고는 축하해주기 위해 바로 내려가지 않았고 기다렸다가 축하해줬다. 소리도 청룡에서 상을 받는 게 정말 오랫만이라 정말 기뻐하더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소리와 함께 수상하게 되다니, 나는 문소리랑 전도연에게 못 벗어나는 배우인가 보다"라며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수상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축하를 해준 사람을 묻자 설경구는 "엄마"라고 답했다.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에게도 시상식 참석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그는 "제가 시상식 간다는 말도 안해서 어머니가 그날 TV를 안보고 있었다. 제가 상을 받고 난 뒤에 어머니가 저의 누나에게 뒤늦게 제 수상 사실을 들었다고 하더라. 어머니가 그날 내 수상 장면을 본방송으로 보지 못한게 분하고 속상해서 이틀 동안 잠을 못주무셨다고 한다. 뒤늦게 휴대폰 다시보기로 보여드렸는데도, 축하한다는 말 대신에 계속 '속상하다'는 말만 하셨다"며 웃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설경구가 22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12.22/
청룡영화상은 설경구에게 단순한 트로피, 그 이상의 의미였다. 앞으로 연기를 위한 응원이었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상의 무게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저의 첫 주연상인 '송어'(박종원 감독)가 개봉하고 바로 도쿄영화제에 초청됐고, 그 다음 개봉했던 주연작인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전수일 감독)가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됐다. 그 다음 개봉했던 '박하사탕'은 칸영화제를 비롯해 굉장히 많은 영화제와 영화상에 초청돼 상을 받았다. 주연작이 연이어 그렇게 되다보니 사실 모든 영화가 그런 줄 알았다.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제나 시상식에 가는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때 어떤 영화 시상식에서 만난 고 신성일 선생님께서 '너 또 왔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연기를 해오면서 시상식이나 영화제 추청된다는 게 당연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얼마나 값지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박하사탕' 이후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전쟁'으로 다시 칸에 초청받기 까지 16년이 걸렸다. 당연한게 아니었다. 청룡영화상에서도 '공공의 적' 이후 이렇게 다시 남우주연상을 받기까지 19년이 걸린거 아닌가.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설경구가 22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12.22/
영화를 하면서 슬럼프에 겪었을 때, 늘 후보로 초청 받던 시상식에 몇년간 초청받지 못했다. 그때 영화계에서 나의 존재감이 얼마나 흐려지고 있는지 여실히 느꼈다.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영화 시상식에 함께 후보에 오르는 것, 그게 얼마나 값진 일이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관객이 내 영화를 찾아주는 것도, 그로 인해 칭찬을 받게 되는 것도, 영화상에 후보에 오르는 것도, 그리고 후보에 올라 수상하는 것까지도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이제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한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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