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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알마)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2021년 현지 출간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비교적 근래작이다.
주인공 이름은 헤르쉬트 플로리안. 그의 성(姓)인 헤르쉬트는 '통치와 지배'를 뜻하지만, 플로리안은 '동네 바보'처럼 어딘가 모자란 면이 있는 인물이다.
힘은 세지만 온순한 덕분에 사람들의 이런저런 일을 도우며 밥을 얻어먹거나 용돈을 받곤 한다.
그런가 하면 플로리안은 시민대학에서 물리학 수업을 듣고서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 문제에 집착하면서 세상이 붕괴할 것이란 우주론적 예측에 빠져든다.
초조함에 사로잡힌 플로리안은 끊임없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자신의 편지를 읽은 총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해주리라고 믿는다.
그런 플로리안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은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보스'다.
보스의 청소회사가 내세운 슬로건은 '알레스 비어트 라인'(Alles Wird Rein), '모든 것이 깨끗하리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rein'은 '깨끗하다' 외에 '순수하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나치의 순수혈통에 대한 그릇된 집착과도 연결된다.
또 작품 전반에서 바흐의 음악이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묵시록적 공포를 상징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가상의 마을 카나는 바흐가 태어난 튀링겐과 연결되고, 바흐의 음악이 끊임없이 배경에 흐른다. 칸타타가 변주되듯 끊임없이 흐르면서 인물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특히 보스는 광신에 가까운 바흐 마니아이자 네오나치의 일원으로, 그에게 바흐의 음악은 예술을 넘어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의 상징에 가깝다.
"하긴 플로리안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보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스에게 바흐는 단순히 많은 작곡가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천상의 존재, 예언자이자 성인이었다,"(53쪽)
그런 바흐의 역사적 건물에 누군가 낙서를 남기자 보스는 광분하고, 스프레이어(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잡으려는 집념은 네오나치의 폭력성으로 귀결된다.
이야기의 배경에는 나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종말과 재앙의 불길한 기운이 문장마다 넘실거린다.
작품은 극우파, 네오나치주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그려낸다. 작가 역시 유대계의 피가 흐른다.
다만 그의 묵시록은 단순한 파괴의 서사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존재 이유를 놓치지 않으려는 문학적 탐색으로 읽힌다.
라슬로의 문체는 길고 화려하면서도 최면적인 리듬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첫 장을 여는 순간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단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한국어판으로 600쪽이 넘는 책 전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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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