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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전 전반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2월 말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팔 접합 수술을 받았다. 부러진 뼈를 둘러싼 근육과 인대까지 손상됐다. 수술 직후 황도연의 팔은 처참했다. 오른팔엔 10㎝ 넘게 긴 바늘자국이 선명했다. 3월 말 한달여의 통깁스를 풀어냈다. 근육이 다 빠져나간 팔은 앙상했다. 무엇보다 90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팔을 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4월 초 부산 동의대학교 부설 DIT 재활센터에서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했다. 전남 광양중고 시절 트레이너로 만난 허 강 팀장과 재회했다. 허 팀장은 1999~2008년까지 9년간 전남 드래곤즈에서 트레이너로 일했다. 광양제철중 시절 밤마다 빵을 들고 찾아와 다리를 맡기던 소년 황도연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허 팀장은 "수비수가 팔을 이렇게 심하게 다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1대1 맞춤형 재활에 돌입했다. 아침 9시면 재활센터로 출근, 하루 8시간 독한 재활을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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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황도연은 런던의 꿈을 놓지 않았다. 23세 그 또래 선수라면 놓을 수 없는 꿈이다. 부지런히 재활해 하루속히 그라운드에 나서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카카오톡 배경사진은 오만전 데뷔골 사진이었다. 재활에 박차를 가하던 4월 중순 병원에서 수술 부위가 굳고 염증이 생겨 재활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8월 이후까지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얻어맞은 듯 멍했다. '올림픽은 이제 끝났구나.' 허 팀장을 끌어안고 엉엉 눈물을 쏟았다. 아들 뒷바라지에 누구보다 헌신적인 부모님께도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날 밤 해운대 바닷가에서 가장 편한 친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기만 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재활은 이어졌다. 가까이서 지켜본 황도연의 재활 과정은 처절했다. 90도, 니은(ㄴ)자로 굳어진 팔을 180도로 펴내야 했다. 1도라도 더 펴야 하는 허 팀장과 뼈와 살이 찢어져내리는 것같은 아픔을 참아야 하는 선수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격렬한 울부짖음이 재활센터에 울려퍼졌다. 팔, 어깨를 만지는 허 팀장의 엄지에는 굳은살이 못박혀 있었다. 재활이란 단순히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넘어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다. 허 팀장은 주소를 묻는 질문에 "부산시 황도군 팔피면 아프리"라고 답했다. 허 팀장의 농담에 고통스러워 하던 황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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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들어 회복에 가속도가 붙었다. 성실한 노력이 빛을 발했다. 5월28일 병원 최종 엑스레이에서 뼈가 50% 이상 붙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적같았다. 애초 진단보다 한달 이상 빠른 회복세였다. 올림픽대표팀이 파주로 소집된 지난 1일, 황도연은 소속팀 대전으로 돌아갔다. 7일 올림픽대표팀의 시리아전 후 방송된 '홍명보호'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을 봤다. "볼까말까 망설이다 봤는데, 사우디전 부상 장면이 나오더라. 시간을 그날 전반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애써 다독인 상처가 다시 아려왔다. 런던올림픽 뉴스가 TV에서 나올 때마다 아쉬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재활 기간, 주말마다 소속팀 대전 경기를 빼놓지 않고 현장 관전했다. "대전에 온 이후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해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너무나 죄송했다. 관중석에서라도 꼭 경기를 지켜보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황도연은 14일 '친정' 전남전, 백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생각보다 이른 출격 명령이었다. 대전 15번 유니폼, 팔목 보호대를 한 채 처음으로 그라운드 잔디 냄새를 맡았다. "축구를 시작하고 이렇게 오래 쉬기는 처음"이었다. 130일 재활의 쓰라린 기억이 '큰 경험'이 됐다. "내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게 됐다.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아직 몸상태나 경기력이 완벽한 상태가 아니지만 믿고 응원해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유상철 대전 감독이 "현역 시절 김태영 올림픽대표팀 코치와 똑 닮았다"며 애정을 표하는 '파이터', 불굴의 황도연이 돌아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