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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베테랑 수비수 이정수(37)의 은퇴 발언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서포터스의 과잉 비난이 기폭제?
지난 16일 K리그 클래식 수원-광주전(0대0 무)이 끝난 뒤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응원석 앞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선수단과 함께 서포터스를 향해 인사를 하던 이정수가 일부 팬을 향해 발끈했고 주변 선수들이 그를 가까스로 말렸다. 일부 팬들이 손가락 욕설에 오물을 뿌리는 등 도를 넘는 행동을 하면서 촉발된 돌발 사태였다. 이후 수원 서포터스 내부에서도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야유를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선수들의 인격까지 모독하는 행위는 잘못됐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팬들의 과잉 행동에 대한 주변 시선도 곱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사건 직후 당사자였던 이정수의 은퇴 발언이 나왔다. 당시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 컸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건 하나만 가지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정수뿐 아니라 수원 선수들은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경기 중 팬들의 비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한 선수는 "막상 팬들의 비난성 목소리가 들리면 그것이 부담스러워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된 채 자꾸 '더 잘 해야 한다'고 의식하면 되레 꼬이는 경우가 많다. 팬들의 야유가 두렵기도 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어느 종목이든 지기 위해 뛰는 선수는 없다. 딴에는 열심히 뛰었지만 상대, 상황에 따라 마음같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잘못할 때 야단치는 방법도 있지만 잘할 때까지 격려해 주는 방법도 있다. 수원 선수들은 격려는 언감생심, 야유를 감수해왔지만 욕설까지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여기에 맏형 이정수가 후배들 보기 안쓰러워 총대를 멨다. '내가 이러려고 돌아온 수원맨이 됐나'하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서포터스와의 충돌은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격이다. 이정수가 이전부터 은퇴를 고민한 저변에는 수원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있다. 이정수의 유별난 '수원사랑'은 작년 3월 컴백 과정에서 이미 나타났다. 당시 그는 수원 재입단 첫 소감으로 "언젠가 한국에 복귀하게 되면 꼭 수원 삼성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입단 과정 비하인드스토리로는, 당시 복수의 팀이 이정수 영입 경쟁을 벌였고 수원이 제시한 몸값의 3배 이상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이정수는 "때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며 수원을 택했다. 이른바 '실탄'이 부족해 포기 직전까지 갔던 수원은 이정수를 '의리의 사나이'라고 했다. 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정수는 수원에 입단한 뒤에도 후배들의 출전 기회를 막는 것 같다는 부담이 컸다고 한다. 출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후배들을 따로 불러 밥을 사주고 위로해 주는 역할은 주로 이정수의 몫이었다. 그런가 하면 경미한 부상에도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출전 욕심보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올시즌 계속 승리하지 못할 때도 후배들을 다독이기 위해 보이지 않게 애 썼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지 않자 맏형으로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선수단의 맏형으로서 선수끼리 잘 이끌지 못한 책임이 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물러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정수 이렇게 보내야 하나
18일 이정수와 1차 면담을 했던 수원 구단은 FA컵 32강전(19일)을 치른 뒤 20일 이정수와 다시 만나 설득할 예정이다. 이런 식으로 이정수의 은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구단의 확고한 방침이다. 이정수의 은퇴를 만류하지 못하면 남아 있는 선수들의 구단에 대한 신뢰감까지 흔들릴 수 있다. '팀' 수원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축구팬들의 응원문화에 대한 자성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구단 관계자는 "이정수를 포함한 우리 선수들과 서포터들간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