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는 오는 31일 오후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아시아 최강 이란을 상대로 중요한 일전을 치른다. 그 결과에 따라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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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우리나라와 4위로 부진한 이란의 대결. 상암벌에서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이란은 반드시 이겨야 본선 진출 희망이 있었다. 후반 6분, 쇼자에이의 골로 승리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박지성이 이란에 찬물을 끼얹었다. 종료 9분 전 박지성이 상대 마크를 뚫고 동점골을 뽑았다. 한국이 이란의 승리를 막았고,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며 최초로 남북한 월드컵 동반진출이 이뤄졌다.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이란은 4년만에 다시 만났다. 후반 26분 카림 바게리의 골로 이란의 승리가 굳어져 가는 순간, 김상식이 종료 휘슬 직전 동점골을 터뜨렸다. 사기가 오른 한국은 연장 전반 10분, 노정윤의 크로스를 받은 이동국이 골든골을 터뜨렸다. 이동국은 무릎을 다쳐 붕대를 칭칭 감은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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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프레레 후임으로 A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아드보카트 감독의 첫 평가전 상대가 이란이었다. 한국은 킥오프 59초만에 결승골을 뽑았다. 김동진의 크로스를 받은 조원희의 오른발 슛이 이란 수비 3명의 몸을 차례로 맞고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조원희는 A매치 데뷔전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골을 남겼다. 한국은 종료 직전 김진규가 쐐기골을 박았다.
④윤빛가람의 결승골(2011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전. 1대0 한국 승)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또 만난 한국과 이란. 다섯번째 연속 대결을 펼쳤다. 90분을 무득점으로 보낸뒤 연장전을 맞았다. 영건 윤빛가람(당시 20세)이 연장전 전반이 끝날 무렵 왼발슛으로 균형을 깨트렸다. 그 혈투의 여파로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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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도쿄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이란은 첫 대결을 했다. 한국의 5골차 대승. 전반 6분 이수남의 골을 시작으로 문정식, 최정민 등이 무더기 골세례를 퍼부었다. 다섯골차는 한국과 이란의 역대 최다골차 경기이자, 이란 대표팀의 역대 모든 경기를 통틀어도 최다골차 패배다.
⑥치욕의 '두바이 참사'(1996년 12월 16일. 아시안컵 8강전. 2대6 한국 패)
이란팬들이 지금도 한국축구를 조롱거리로 삼는 경기. 전반엔 신태용과 김도훈의 골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후반 수비 전열이 무너지면서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얻어맞고 2대6이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했다. 4골차는 지금까지 한국이 아시아팀에 당한 최다골차 패배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과 이란은 이후 아시안컵 8강전에서만 5회 연속 맞붙었다.
⑦카리미에게 당하다(2004년 7월 31일. 아시안컵 8강전. 3대4 한국 패)
다시 아시안컵 8강전. 장소는 중국 지난. 박지성과 알리 카리미의 맞대결. 이란이 넣으면 한국이 쫓아가는 모양새로 난타전이 펼쳐졌다. 카리미-설기현-카리미-이동국-자책골(박진섭)-김남일의 골이 이어져 3-3까지 갔다. 그리고 후반 32분, 카리미에 다시 결승골을 허용했다. 그 경기서 김진규는 이란 벤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고 징계(2경기 출전 정지)를 받았다.
⑧케이로스의 주먹감자(2013년 6월 18일.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0대1 한국 패)
4년전에 이어 또 최종예선 마지막 관문에서 만났다.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 진출을 거의 확정한 상태였고, 이란은 지면 3위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경기전 양팀(최강희 케이로스) 감독은 날카로운 입씨름을 펼쳤다. 후반 15분 구차네자드의 결승골이 터졌다. 경기 후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 이날 우즈베키스탄은 카타르를 5대1로 대파했는데, 두골만 더 넣었더라면 한국이 3위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⑨아시안컵 첫 쓴잔을 마시다(1972년 5월 19일. 아시안컵 결승. 1대2 한국 패)
한국과 이란이 메이저 대회 우승을 놓고 유일하게 격돌했던 1972년 태국아시안컵 결승전.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이란에 맞서 한국은 김 호, 이회택 그리고 열아홉살 신예 차범근을 앞세웠다.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후반 초반에 한골을 허용한 뒤 박이천이 동점골을 넣어 연장까지 갔다. 그러나 연장 후반 실점해 정상 문턱에서 쓴잔을 들었다.
⑩이회택의 '항명 사건'(1977년 7월 3일 월드컵 최종예선. 0대0 무)
월드컵 진출을 놓고 이란과 최초로 맞붙은 경기. 1977년 부산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월드컵 최종예선전. 이 경기는 한국대표팀이 처음 지방에서 치른 A매치였는데, 이회택의 항명 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이회택이 전반전에 부진했고, 당시 최정민 감독은 하프타임에 교체 아웃을 지시했다. 당대 최고 스타로서 자존심이 상한 이회택은 축구화를 라커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가버렸다. 이회택은 즉시 대표팀에서 방출됐고, 그 이란전은 이회택의 마지막 A매치가 되고 말았다.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