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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결국 빅클럽들이 칼을 뽑았다.
물론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슈퍼리그'는 빅클럽들의 꿈이었다. 현재 ESL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2009년부터 슈퍼리그 창설을 추진했다. 그는 "최고는 항상 최고여야 한다. 우리에게 다음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슈퍼리그가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반대 속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슈퍼리그 창설에 관한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18년 풋볼리크스는 독일 슈피겔을 통해 '유럽 빅클럽들이 2021년 슈퍼리그 출범을 계획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결국 슈퍼리그는 현실이 됐다. 눈여겨 볼 것은 발표시점이다. UEFA는 20일 새로운 유럽챔피언스리그 개편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기존의 32개팀 체제에서 36개팀 체제로 늘어나고, 빅클럽 입장에서 최대 10경기 이상을 추가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UEFA는 더 큰 수익을 보장해달라는 유럽 클럽 연합(ECA)과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이같은 내용을 받아들이고, 승인까지 마쳤다. 그런데 난데 없이 발표 하루 전 슈퍼리그 창설이라는 대형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가디언은 '슈퍼리그 출범은 갑자기 결정됐다'며 '아마도 UEFA 발표 전 12개팀이 먼저 움직이자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UEFA는 강경한 반응이다. UEFA는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축구협회와 EPL·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 세리에A 사무국과 함께 성명을 내고 "(슈퍼리그)는 일부 구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며 "대회가 창설된다면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연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UEFA 등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고려할 것이다. 축구는 개방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FIFA와 6개 대륙연맹이 발표했듯,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은 국내외 리그나 국제대회 참가가 금지될 수 있다. 또 해당 구단에 속한 선수들은 자국 국가대표팀에서도 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슈퍼리그 창설 발표'가 UEFA에 대항, 빅클럽들이 영향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액션'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칼을 빼든만큼 슈퍼리그를 향한 빅클럽들의 움직임은 강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미국 뉴욕의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사가 스폰서로 나서 46억 파운드(약 7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금을 확보한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빅클럽 입장에서는 지금 이상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슈퍼리그일까. UEFA가 유럽챔피언스리그 포맷까지 바꿔줬음에도, 리그-협회-레전드-팬들의 극렬한 반대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빅클럽들이 슈퍼리그를 원하는 이유가 뭘까.
핵심은 스스로 운영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빅클럽들의 가장 큰 불만은 수익 분배 구조다. 현재 가장 큰 돈을 만들어내는 대회는 유럽챔피언스리그, 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다. 이 대회와 리그를 이끌어가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빅클럽이다. 사람들은 플젠-바젤전 보다는 레알 마드리드-바이에른 뮌헨전을, 크리스탈팰리스-풀럼전 보다는 맨유-리버풀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클럽들은 그에 걸맞는 수익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중소 클럽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행 구조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수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클럽들은 각국의 축구협회가 인가한 국내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잉글랜드 클럽들은 FA로 불리는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인가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속한다. 여기에 FA가 회원인 UEFA가 주관하는 클럽 대회에서 뛰어야 한다. 쉽게 말해, 맨유는 FA,EPL, UEFA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FA, EPL, UEFA는 이익 집단이 아니다. 자국의, 리그의, 대륙의 축구발전이 최우선 목표다. 때문에 빅클럽의 몫을 인정하면서도, 수익의 상당부분을 하급리그를 비롯한 풀뿌리 축구에도 투자해야 한다. 빅클럽 입장에서는 '나때문에 번돈을 애먼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슈퍼리그는 내가 번 돈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인 셈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속내가 깔려 있다. '북미식 프로스포츠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축구는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규모면에서 북미 스포츠를 넘지 못한다. 빅클럽들은 앞서 설명한 유럽식 시스템의 한계라고 여기고 있다. 유럽식 스포츠는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 지역을 대표할 수많은 팀들을 만들었고, 이들의 보다 많은 참여와 기회를 강조한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승강제다. 혁명의 역사를 가진 대륙 답게 어제의 꼴찌가 내일의 1등이 될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 있는 구조다.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최상위팀은 희생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북미 스포츠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성이다. 팀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MLB, NBA, NFL, MLS 등 리그에 참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한번 가입한 구성원은 엄청난 힘을 갖는다. NBA의 경우, 구단주는 사실상 리그의 주주로 인정을 받고, 수입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공유할 수도 있다. 샐러리캡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독점적 지휘를 잃지 않는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즈가 몇년간 최하위를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MLB에 있다. 뉴욕 양키스는 뉴욕 양키스대로, LA레이커스는 LA레이커스대로 벌어서 쓰면 된다.
빅클럽들은 이같은 시스템에 대한 갈망이 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축구계에는 북미쪽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빅클럽들은 유럽 스포츠의 꽃인 축구를 북미식 시스템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ESL가 승강제 없이 초대 12개팀에 대한 절대적인 지위를 준 이유다. 결국 슈퍼리그는 빅클럽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지위와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승부수'인 셈이다.
유럽 축구계가 슈퍼리그를 결사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보다 맨유의 이익을 대변하려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조차 "슈퍼리그 창설은 유럽 축구 역사를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했다. 슈퍼리그 창설은 지난 수백년간 이어온 유럽 스포츠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일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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