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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인터뷰]'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성공한 실패자 주민규가 전하는 묵직한 희망의 메시지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22-02-02 11:30 | 최종수정 2022-02-03 06:00


인터뷰 중인 주민규.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실망할 필요 없어요. 다시 잘 끼우면 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실패'라곤 몰랐던 축구선수가 있었다. 늘 최고의 길만 걸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그가 처참한 실패를 만났다. 그 실패가 어찌나 아팠던지 문자 그대로 '숨이 막힐' 정도로 울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뒷바라지 해 준 부모님,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두 동생을 생각해서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그는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만화에 나올 법한 성공담의 주인공, 2021 K리그1 득점왕을 차지한 제주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주민규(32)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오만했던 실패자'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지금도 좌절해서 주저앉은 많은 후배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규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자만에 빠졌던 20대, 통곡하며 자책하다

주민규는 축구 명문학교들을 거쳤다. 덕성초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풍생중-보인고-대신고-한양대를 거치는 동안 늘 '우리 학교로 오라'는 제안만 들었다. 당연히 졸업 후에도 일류프로팀의 지명을 받아 '팀 우승-스타 등극-국가대표'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2013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났다. 어떤 구단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주민규는 "내 이름을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을 때 비로소 '내가 오만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더군요"라고 말했다.

그 길로 집에 돌아온 주민규는 방에 틀어박혀 통곡했다. "하도 울었더니 나중에는 숨도 쉬기 어렵더라고요. '축구를 때려 치울까'하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막상 포기하긴 아쉽더군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과 두 동생을 생각하니 그럴 순 없었죠. '일단은 한번만 더 해보고, 그때도 안되면 내려놓자'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두 번의 터닝 포인트, 고양 입단과 이랜드 이적


밑바닥까지 떨어진 주민규에게 동아줄 하나가 나려왔다. K리그 챌린지(2부) 소속의 고양 Hi FC가 '번외지명'으로 그를 불렀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작한 고양 생활. 주민규는 "팀에 베테랑 선배들이 많았는데, 이 형들이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 환경적으로는 열악했지만, 정말 재미있게 축구를 했어요. 그때 주위의 사람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죠."

고양에서 2년 동안 활력을 되찾은 주민규는 2014년 말, 당시 창단을 준비하던 서울 이랜드 마틴 레니 감독의 합류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입단 전에 미팅을 하는데, 대뜸 '미드필더 대신 공격수를 할 생각은 없나? 우리 팀에 안와도 좋으니 다시 생각해봐라. 만약 공격수로 바꾸면 이동국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10년 넘게 해 온 포지션을 바꾸라는 뜻 밖의 이야기. 주민규는 당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미팅 끝나고 오면서 솔직히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정신 나간 것 아냐?'라고 에이전트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끌리더군요. '발상의 전환'이었죠. 물론 '이동국처럼 될 수 있다'는 말도 매력적이었고요."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었다. 주민규는 과감히 이랜드행을 택했고, 포지션 변경도 받아들였다.

▶나와 함께한 모든 이가 내 스승이었다

2015년 이랜드로 이적한 주민규는 공격수로서 걸음마부터 시작했다. 굶주린 아이처럼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었다. 감독, 코칭스태프, 동료 선후배, 외국인 선수 등. 모든 이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기술을 따라 배웠다. 주민규는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내 스승님이었어요. 이랜드의 레니 감독님이나 박건하 감독님, 그리고 울산에서 만난 김도훈 감독님 등 전부 좋은 선생님들이었죠. 어릴 때부터 공격수를 해 온 어린 후배들을 관찰하면서 배우기도 했어요"라고 밝혔다.

레니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주민규는 점점 더 공격수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변신 첫 해 40경기에서 23골을 넣으며 K리그 챌린지 득점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PK골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이후의 과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주민규는 상무와 울산을 거쳐 2020년 제주 유니폼을 입었고, 팀을 K리그2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지난해에는 K리그1 득점왕에 올랐다. '이동국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다'던 레니 감독의 말이 불과 6년 만에 실현된 것이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미래는 누구도 몰라. 지금 열심히 살면 좋은 날 온다

어려움을 딛고 큰 성공을 사람의 행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어려웠던 시절을 아예 잊거나, 자신처럼 어려웠던 사람들을 도우려 하거나. 주민규는 후자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보면서 많은 후배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비록 시작이 어긋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흔히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결과가 나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본보기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딘가에서 좌절하고 있을 이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말로 그치지 않는다. 주민규는 기부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주민규는 "크게 한번 좌절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과거의 나처럼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선수들이 나를 본보기 삼아서 다시 일어섰으면 좋겠어요. 미래는 누구도 모르니까, 지금 열심히 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꼭 옵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올 시즌 주민규의 목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조준 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득점왕 2연패, 그리고 팀의 우승이다. 둘 중에서는 후자 쪽에 더 힘이 쏠린다. "올해는 나 뿐만 아니라 골을 터트릴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졌어요. 아마 사방팔방에서 골이 나와 상대가 좀 헷갈릴 겁니다. 2년 연속 득점왕도 좋지만, 제주에서 우승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라며 올 시즌 목표를 밝혔다. '선한 영향력'을 마구 뿜어내는 남자, 주민규가 과연 이 목표들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목표에 가까워질 수록,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더 힘있게 멀리 퍼질 것 같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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