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이건 축구가 아니다."
첼시의 엔초 마레스카 감독은 지난해 6월 29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뱅크오브아메리카스타디움에서 벤피카(포르투갈)와의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16강전을 마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이날 경기는 무려 5시간이 소요됐다. 예정된 시각에 경기가 시작됐지만, 첼시가 1-0으로 앞서던 후반 41분 미국 기상청의 낙뢰 예보에 따라 경기가 중단됐다. 양팀 선수들은 2시간 넘게 라커룸에서 대기하다 경기를 속개했고, 벤피카의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치른 끝에 경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미국 동부 지역은 6~7월마다 낙뢰 사고가 빈번하다. 이로 인해 반경 8마일(약 13㎞) 내에 낙뢰가 있을 경우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하고, 30분 동안 낙뢰가 없을 경우에만 야외 활동을 허가하는 이른바 '8마일룰'을 시행 중이다. 이 룰이 지난 클럽월드컵 기간 그대로 적용되면서 경기 중단이 속출했다. 당시 대회에 나섰던 K리그1 울산 HD도 마멜로디 선다운스(남아공)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시작 직후 8마일룰에 의해 경기가 중단돼 대기하다 결국 감각을 잃고 패한 바 있다.
멕시코, 캐나다와 함께 북중미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미국에선 11개 도시에서 경기가 열린다. 이 중 5개 도시(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마이애미)가 동부지역에 속한다.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은 돔구장으로 8마일룰 영향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나머지 4개 경기장에선 변수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낙뢰만 문제가 아니다. 폭염 문제도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단 뿐만 아니라 관중들을 괴롭힐 요소로 꼽힌다. 클럽월드컵에 출전했던 도르트문트는 폭염 문제로 인해 대기 선수들을 벤치가 아닌 실내 라커룸에서 쉬게 하고 TV로 경기를 지켜보게 한 바 있다. 선발로 나섰던 선수들도 물로 유니폼을 적셔가며 뛰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1994 미국월드컵 당시에도 폭염 문제는 큰 변수였다. 당시 세계적 이상 기후로 매 경기 35~40도에 이르는 폭염 속에 선수들이 경기를 치른 바 있다. 대부분의 경기가 관중석 지붕이 없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펼쳐져 선수 뿐만 아니라 관중들도 더위에 몸살을 앓은 바 있다. 이후 3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장 시설은 발전했으나 폭염 문제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회 흥행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FIFA의 속을 썩이는 건 날씨 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민 정책도 대회 흥행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현지에선 히스패닉 등 미국 내 축구 열기를 주도해왔던 이민자들이 높은 월드컵 입장권 내지 체류 비용 뿐만 아니라 단속 문제로 직관 대신 TV로 경기를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명보호는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멕시코에서 치른다. 미국과 지척인 멕시코이기에 홍명보호도 여름 더위 문제는 피하지 못할 전망. 그러나 고지대에서 경기를 치러 상대적으로 쾌적한 날씨에서 경기를 할 수 있고, 낙뢰 예보 등으로 경기가 불시 중단돼 컨디션을 망칠 위험이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런 부분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