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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과 충청남도 당진, 서해대교가 맞물려 있는 평택항 일대는 최근 몇 달간 홍역을 앓고 있다. 평택항 서부두에 자리잡은 시멘트 공장들은 애써 사태를 외면하고 있고, 분진과 악취로 고통받는 주민들은 소송불사를 외친다.
사건의 발단은 2년전 평택항 서부두에 시멘트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한일시멘트와 영진글로벌의 고로 슬래그 시멘트 공장이 1차로 가동중이고, 그 옆에 올해안으로 현대시멘트와 삼표시멘트가 공장을 추가 완공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산업분류 차이지만 그렇지 않다. 공장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주민공청회 등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적법한 환경오염방지 시설도 갖춰야 한다. 창고는 이러한 시설이 필요없다. 수백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시멘트 회사들은 평택 항만청의 실적올리기와 당진시청의 무사안일 행정의 틈을 파고 들었다.
평택항 가보니 한눈에 봐도 공장
평택항을 직접 찾았다. 서부두는 바빴다.
완공을 눈앞에 둔 현대시멘트, 삼표시멘트 공장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영업중인 한일시멘트와 영진글로벌 공장은 활기가 넘쳤다. 누가봐도 공장인데 해당 회사들과 당진시청, 항만청은 재생업을 위한 창고라는 어이없는 답변만 되풀이 한다.
이곳 공장들이 다루는 고로 슬래그는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철광석 철을 빼내고 남은 찌꺼기다. 고로 슬래그는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의 대체제다. 이것을 재가공(석고 첨가)해 래미콘 1차 재료 중 하나인 '고로 슬래그 미분말'을 만들거나 일반 시멘트와 슬래그 미분말을 1대1로 섞어 '고로 슬래그 시멘트' 완제품을 만든다.
시멘트 공장이 가동된 지난 2년간 분진 때문에 고생한 인근 주민들은 줄기차게 항의했다. 당진시청과 항만청은 마지못해 법제처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면서 그나마 사실까지 왜곡했다. 핵심을 빼버려 결과를 바꿔놓았다.
항만청은 서부두 시설을 분양하면서 수천억원을 지불한 업체들의 편의를 봐줬다. 공장 대신 창고로 등록하게 해줬다. 문제가 되자 '고로 슬래그 미분말을 만드는 것이 제조업인가 재생업인가'를 놓고 상위 기관에 문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고로 슬래그에 첨가해 미분말을 만드는 석고를 슬쩍 뺐다. 뭔가를 더하면 재생업이 아닌 제조업으로 판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슬래그 미분말 제조가 82%, 슬래그 시멘트 제조가 18%에 불과하다는 업체측 주장을 맹신했다. 생산 분류는 생산량 과반을 점하는 제품에 따라 나뉘어지곤 한다. 원칙적으로 석고를 섞지 않았을 경우 슬래그 미분말은 재생업, 슬래그 시멘트는 제조업이다.
고로 슬래그 미분말과 슬래그 시멘트 공정에 대한 설명은 영진글로벌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 있다. 석고 첨가 사실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석고는 미분말의 접착력을 높여 상품성을 증대시킨다.
이곳은 공장인가, 창고인가.
한일시멘트에 전화를 걸었다. 관계자에게 물었다. "평택항 서부두에 있는 시설은 뭡니까."
직원은 즉시 "공장"이라고 답했다. 한일시멘트는 평택공장 기공 단계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공장이라는 표현을 뺀 적이 없다. '평택공장 KS인증'도 공개 발표했다.
영진글로벌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오는 회사 연혁에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적시돼 있다. 2010년 4월 '공장 첫 가동'이라고 쓰여있고, 고로 슬래그 미분말이 연간 80만톤, 고로 슬래그 시멘트가 연간 100만톤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나마 재생업에 가까운 슬래그 미분말보다는 제조업인 슬래그 시멘트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들 고통, 이만저만 아니다
2개의 시멘트 공장이 가동되는 지금도 주민들은 울상인데 올해 안으로 2개가 더 건설되면 상황은 악화일로다. 시멘트 공장에서 반경 2km 내외에는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에스알 아파트 주민 2000여명을 비롯해 만도아파트, 명지아파트, 삼부아파트 등 모두 2만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주민들의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100여명은 매일 약을 복용할 정도다. 바닷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분진은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게 만든다. 서부두에는 최근 깻묵가루 등 사료 하역장까지 들어섰다. 분진 뿐만 아니라 악취까지 이중고다.
주민들 사이에도 시위를 놓고 이견은 많았다. 신동준 평택항 환경개선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노이즈 마케팅은 아파트 주민에게는 오히려 치명적이다. 문제가 있어도 집값과 주변 평판을 고려해 쉬 쉬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이러겠느냐. 공기 좋던 이곳이 엉망이 됐다. 그렇다고 고향을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관할 지자체인 당진시와 항만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일시멘트와 영진글로벌은 행정기관의 비호속에 주민들과의 접촉도 꺼리고 있다. 이 와중에 분진과 악취의 최대 고비인 여름은 또 다가오고 있다.
주민들은 한일시멘트와 영진글로벌에 적법한 절차에 의한 환경대책 세우기를 촉구하고 있다. 또 주민 설명회와 적절한 피해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한일시멘트, 영진글로벌, 항만청을 상대로 고발, 고소를 준비 중이다. 한일시멘트와 영진글로벌 측은 이와 관련, 답변을 회피했다. 당진, 평택=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