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돈 내고 설치하지도 않은 케이블방송이 내내 나와서 한때 홈쇼핑에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 중의 하나인데 정말 전 종목 두루 석권하면서 이것 저것을 사들인 아픔(?)이 있다. 물론 다 실패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과소비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 유독 큰 부피의 물건을 사들이는 날에 왜 그리 남편은 일찍 들어오는지. 또 택배아저씨가 인터폰을 하는 순간, 남편의 일그러지는 얼굴은 또 뭐냐 이거다. 태생이 포커페이스하고는 담 쌓은 남자라서 "또 뭘 사들였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정말로 홈쇼핑에 진저리를 치는 대사건이 있었으니…. 참으로 흔치 않은 경험이긴 하겠으나 여기 조심스레 풀어놓겠다. 홈쇼핑에서 가장 실망스런 품목이 있다면 바로 '식품'이 아닐까 싶다. 뭐, 짐작이 가겠지만 식품이라고 안 사보았겠는가? 오징어에 갈치에 냉동식품 몇 가지 기타 등등…. 최고로 환장하게 만드는 품목은 바로 '육류'였다. 본품도 육질이 질기기로 상당하지만 사은품으로 따라오는 정체불명의 고기는 삼십년 묵은 타이어 조각을 씹는 듯 치아의 저작기능에 엄청난 지장을 주는 정도였으니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홈쇼핑에서 가장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한마디는 '매진임박'과 '이런 구성은 다시 없습니다' 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몇 년 전 그날도 그러했다. N홈쇼핑에서 한우불고기를 파격세일하는데 이미 양념된 것을 정말 염가에 팔고 있었다. 광우병 파동이 나기도 한참 전이었는데 사람이 뭔가에 홀리면 뵈는 게 없는 것 같다는 것을 실감한다.
맛도 나쁘지 않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고, 당시엔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도 아니라서 싸게 맛난 고기를 먹는 게 어디냐…. 뭐 이런 심리였던 것 같다. 반 정도 먹고 냉동실에 넣어두었을 즈음 뉴스에 엄청난 사건을 보도하는데, 아뿔싸!!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이 올라왔던 것이다.
내가 주문해서 잘 먹고 있던 그 제품이 바로 국내산 육우를 몰래 잡아서 물 먹인 소로 만든 양념육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동안 먹은 고기를 다 토해내고 싶은 아주 기막히게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말도 못하고 먹은 애는 뭐냐 이 말이지.
날이 밝자마자 N홈쇼핑에 전화해서 컴플레인을 걸었다. 통화연결이 잘 안되어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던 것은 물론이다. 지금도 그 전화를 받았던 직원이 무슨 죄가 있으랴 싶지만 오랜 세월 이 사회의 불만에 대해 쌓였던 묵은 감정을 원도 한도 없이 그 회사의 고객센터에 쏟아부어 가루가 되게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아…. 정말 유아스러운 짓이지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손이 발이 되게 빌던 그 회사측은 아무것도 모르고 팔았다며 사죄의 뜻으로 환불해주고 사골곰탕을 보내주겠다며 극구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못 이기는 척 전화를 끊은 나는 결국 며칠 후 환불과 함께 냉동된 사골곰탕을 받았다.
역시 맛은 그저 그랬으나 먹고 있을 즈음…. 모친께서 잠시 들르셨다가 냉동실의 그 곰탕을 발견하곤 대노하셔서…. (하마터면 그 냉동된 딱딱한 곰탕 덩어리로 맞을 뻔 했다) 모녀간의 연을 끊고 말겠다는 엄포에 홈쇼핑 구매를 그만두게 되었다. 물론 몇 년 후 두어 품목을 소소히 지르긴 했으나 그전처럼 방송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전화기를 껴안고 '매진임박'에 버튼을 누르는 짓과는 미련 없이 이별했다. 가끔이지만 홈쇼핑 화면이 지나갈때면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지금도 마트에서 절대 '양념육'은 사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홈쇼핑의 아픈 추억이 그대의 통장을 살찌우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조언해드리고 싶다. SC페이퍼진 명예주부기자 1기 고정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