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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관계 없으면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 손에 놀아나게 될 것" 경고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국무부가 한꺼번에 감원한 직원 1천300여명 가운데 중국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도 적잖게 포함됐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4일(현지시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최우선 대외기조인 대중견제와 어긋나는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1일 일반직 공무원 1천107명과 외교관직 간부 246명에게 "직위가 폐지됐다"며 해고 통보를 보내고, 당일 오후 5시까지 짐을 싸서 사무실에서 퇴거토록 지시했다.
WP에 따르면 해고된 직원들 중에는 글로벌 여성 이슈, 미국의 소프트파워 관련 사업, 화학무기 정책, 다자간 핵 외교 등을 담당하던 외교관들이 포함됐다.
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을 담당해오던 내근 데스크직 공무원들도 자리가 없어졌다.
동아시아태평양국 내 다자업무과가 폐지되면서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에 대한 외교적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다자업무를 담당해오던 직원들이 사라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WP에 미국 국무부의 아세안 지역 다자간 업무 담당 조직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각 나라를 각각 양자관계로만 다루는 것이 중국이 원하는 바라고 말했다.
국무부 남중앙아시아국 내 안보초국적업무과도 없어졌다.
이 부서는 수억 달러 규모의 대외 원조를 관리해왔으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협의체인 이른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관련해 기술과 안보 이슈에 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미끼로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을 하나씩 떼어내려고 해왔다.
바이든 행정부 백악관에서 아시아 정책 보좌관으로 일했던 미라 래프-후퍼는 "미-중 경쟁은 양자간 진공상태(미국과 중국 두 나라만 있고 다른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대외 원조를 끊고 이 핵심 지역에 전문성이 있는 외교관들을 해고한 것은 항복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고위직을 지낸 중국·동남아시아 전문가 헨리에타 레빈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과 경쟁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루비오(국무장관)가 중국이 제1번 순위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담당하는 팀을 국무부가 제거하는 것을 보니 혼란스럽다"고 WP에 말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업무를 담당해오던 전문가들의 책상도 치워졌다.
양자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자 1명을 포함한 양자기술 전문가 2명과 인공지능 전문가 3명이 해직됐다.
또 사이버공간디지털정책국 내에서 AI와 5G 무선통신 기술과 글로벌 데이터 정책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하는 업무를 담당해온 국무부 직원들도 실직했다.
이번 국무부 감원은 올해 5월 국무부가 연방의회에 통보한 감원 계획의 일환이다.
당시 국무부는 미국 내에서 근무하는 직원 1만8천700여명 중 18%를 정리해고, 자발적 이직, 명예퇴직 등으로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지난달 국무부에 민주주의인권노동국 내 거의 모든 대외원조 프로그램을 폐지토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중국 내 민주화 운동과 정치개혁을 지원하는 업무가 국무부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solatid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