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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앞두고 유관순 열사를 조롱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이 공분을 사고 있지만, 정작 현행법으로는 제작자를 형사 처벌하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맞춰 낡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소셜미디어 틱톡에 올라온 유관순 열사 조롱 영상들을 인지했으나 아직 내사(입건 전 조사)에는 착수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내사는 정식 수사 전 실제 수사 대상이 되는지를 검토하는 단계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문 끝에 옥사한 열사를 악의적으로 조롱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경찰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배경에는 '법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고인 모독 사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혐의는 사자명예훼손죄다. 하지만 이 법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만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문제의 영상처럼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게 의미 없는 원색적 조롱이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욕설 등은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모욕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모욕죄가 보호하는 대상은 '생존하는 인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플랫폼 측에 영상 삭제를 요청하고 조처를 기다리는 일 외엔 당국도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간 국내에선 위인의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등 AI 기술의 긍정적 측면이 주로 부각돼 왔다. 이 같은 딥페이크 폐해가 공개 지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역사적 인물이 '고인 모독' 수준의 유머 소재로 악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선 지 오래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오픈AI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미지를 사용한 영상 생성을 차단했다. 각종 모욕성 콘텐츠가 양산돼 유족 피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픈AI는 당시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유족은 그 초상을 어떻게 쓸지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관련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의 법 제도는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 발의된 법안들은 주로 인물 사진을 AI에 입력해 성 착취물을 생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4월 사자 모욕죄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 발의되긴 했으나, 생성형 AI의 부작용과 결부된 본격적인 입법 논의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pual07@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