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특파원 시선] 밈이 돼버린 전쟁

기사입력

[인스타그램 @vrhunskeprice. 재판매 및 DB 금지]
[인스타그램 @vrhunskeprice. 재판매 및 DB 금지]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을 미사일에 붙이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속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열게 도와줘'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도롯가에 서 있다.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 군사작전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다.

이 이미지는 그보다 일주일쯤 전 인터넷 정치풍자 채널에 올라온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상에는 한국을 비롯해 군함 파견을 요청받은 5개국 정상도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모는 승용차가 눈앞을 그냥 지나쳐 가는 바람에 도롯가에 고여있던 물을 뒤집어 쓰고 만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악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선전전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전통'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거의 매일 자국 민간인 피해와 상대방의 전쟁규범 위반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번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에서는 선전전이 AI와 결합해 악마화에서 조롱으로 본격 진화했다.

조롱당한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백악관은 '탑건' 등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에 컴퓨터 게임 장면까지 동원해 전쟁 홍보영상을 연일 만들고 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전쟁을 가볍게 여겨 희화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감수성이 보이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꽤나 영리한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전쟁을 게임 구경하듯 하면서 당사자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인터넷 트렌드를 정확히 공략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상대방 탱크 폭격을 드론으로 촬영해 조준선을 그려넣거나 병사의 몸에 장착한 보디캠을 이용해 총격전을 1인칭으로 보여주는 선전 전략을 써왔다. 이런 영상을 퍼나르며 붙인 '자폭 드론 명중', '총 맞고도 멀쩡' 같은 유튜브 섬네일에도 생명에 대한 존중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1991년 걸프전쟁을 미국 방송사들이 실시간 생중계하는 걸 보고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넷 밈과 유튜브 콘텐츠로 소비되는 전쟁에는 전쟁의 무참함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질주' 주인공에 폭사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입힌 영상이 기발하면서도 섬뜩한 이유다.

dada@yna.co.kr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