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싱 히스토리 주인공은 두 차례나 동양챔피언을 지낸 정순현(천안농고-인천체대)입니다. 70년대 프로복싱 최대 이변의 경기로 손꼽히는 77년 7월 주니어페더급 한국 타이틀전(청주)에서 챔피언이자 국가대표 간판스타인 고생근을 KO로 잡으며 신데렐라로 급부상한 주인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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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현은 경기가 시작되고 예상대로 초반부터 고생근에게 면도날 펀치를 허용해 안면에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하지만 계체량에 실패한 여파 때문인지 갈수록 소진되는 고생근의 체력과 함께 무뎌진 면도날 펀치를 간파한 정순현은 6회 이후 적극 공세를 펼쳐 서서히 전세를 역전시켰고, 7회부터 직선(스트레이트)과 곡선(훅)이 하모니를 이룬 특유의 연타가 기관총처럼 불을 뿜기 시작합니다. 운명의 9회, 정순현이 혼전 중에 회심의 일타인 라이트훅을 던지자 이를 맞은 고생근은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듯 천장을 응시하며 쓰러집니다. 동공이 풀린 채 가쁜 숨만 몰아쉬며 세대교체를 알리는 '카운트 아웃' 소리에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고생근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고, 승자 정순현으로서는 낭중지추의 면모가 세인들에게 서서히 각인되는 시발점이 된 경기였죠. 5년 후 벌어지는 황충재-황준석 전과 비견된 정도로 극적인 반전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경기였죠. 이 경기는 정순현의 커리어에 중요한 변곡점이 됩니다. 하지만 고생근은 그 1패가 치명타가 되어 이후 마치 방전된 배터리처럼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하다 1년 8개월 후 33전 29승(15KO승) 1무 3패의 전적을 남긴 채 소리소문없이 링을 등졌죠. 82년 황충재가 쿠에바스와의 경기가 무산되면서 맥빠진 상태에서 치른 경기가 황준석과의 경기였다면, 고생근은 77년 후앙 안토니오 로페즈와의 세계랭킹전이 무산되면서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서 치른 경기가 정순현 전이었다는 점에서 두 승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후 정순현은 당시 한화그룹 김종희 회장의 배려로 빙그레란 계열사에 취직, 생활이 안정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복서들의 정신적인 안정은 비약적인 경기력 향상으로 직결되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합니다. 괄목할 만한 급성장을 한 정순현은 4연속 KO 퍼레이드를 포함, 8연승 행진을 펼칩니다. 이 중에는 홍수환, 염동균, 고생근이 싸워 단 한 차례도 다운시키지 못했던 '터프함의 대명사' 다나카 지로라는 끈적끈적한 복서를 2회에 마치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이 쉽게 제압한 경기도 있습니다. 이 밖에 다나카 후타로, 가사하라 유 등 홍수환과 맞대결하여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치열한 타격전을 벌였던 일본의 정상급 세계랭커들도 연달아 정순현의 쇼트훅에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말았죠. 특히 78년 1월, 당시 44전 41승(14KO승) 3패를 기록중이던 한 체급 위의 페더급 동양챔피언 황복수와의 진검승부에서 한 차례 다운을 잡아내며 승리, 고생근을 잡은 게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죠. 정순현은 78년 2월 WBC 페더급 1위에 등극합니다. 남은 건 오직 하나, 세계 정상 정복이란 복서 최대의 과제였죠.
정순현은 마침내 홍수환을 누르고 챔피언이 된 WBA 주니어페더급의 리카르도 카르도나(콜롬비아)와 78년 11월 장충체육관에서 운명의 한판 승부를 펼칩니다. 당시 정순현은 17전 15승(6KO승) 2패였고, 챔피언 카로도나는 26전 19승(12KO승) 1무 4패였죠. 정순현은 신장과 리치에서 열세였지만,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도 굴하지 않고 유효타를 성공시키면서 선전합니다. 특히 9회에 회심의 카운터 펀치가 작렬하며 결정적인 찬스를 포착했지만, 흘러내리는 피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맙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홈링임을 감안하면 무난한 판정승이 예상되었죠. 하지만 경기는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순간이었죠. 와신상담. 7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정순현은 카르도나와 리턴매치를 벌이지만 또다시 분루를 삼킵니다. 팬들이 기억하는 정순현의 사실상 마지막 경기였죠.
32세가 되던 83년, 정순현은 34전 28승(17KO승) 6패의 전적을 남기고 정든 링을 떠났습니다. 일본 선수와 8차례 맞붙어 전부 KO승을 기록했고, 14차례나 각종 타이틀이 걸린 진검승부를 펼쳤으며, 6패조차도 전부 타이틀전에서 기록한 순도 높은 커리어에 그는 흡족해했습니다. 게다가 단 한 번도 KO패 당하지 않은 기록과 함께 동양타이틀을 통산 8차례나 방어한 업적도 가슴에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더군요. 정순현에게 치명적인 2패를 선물했던 리카르도 카르도나는 2015년 10월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득 인생이란 순환되는 삶 속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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