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손연재 '리본 0점 불운' 왜?

최종수정 2012-05-21 02:57

◇손연재가 타슈켄트 월드컵 결선 무대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리본이 끊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동료인 알리야 가라예바가 자신의 리본을 던져줬다. 손연재는 가라예바의 리본을 들고 최선을 다해 연기를 마무리했다. 가까스로 리본 루틴을 마쳤지만 결과는 0점처리였다. 자신의 대체수구가 아닌 타인의 수구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손연재가 포디움을 힘없이 빠져나왔다. 자신의 리본을 돌려받은 가라예바는 손연재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아쉬우면서도 훈훈한 장면이었다.

20일 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월드컵 마지막 리본 결선 무대, 손연재(18·세종고)는 '아제르바이잔 에이스' 알리야 가라예바에 이어 두번째로 경연에 나섰다. 포디움에 들어서자마자 한발로 빨간 리본을 밟은 채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들었다. 올시즌 4연속 결선 진출을 이뤄내며 호평받은 리본 프로그램이다. 직전 불가리아 소피아월드컵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직전 곤봉 루틴에서 실수하며 7위(27.700점)에 그쳤다. 마지막 종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러나 음악이 시작되고 궁극의 연기를 펼치려는 찰라 거짓말처럼 리본이 뚝하고 끊어졌다.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였다. 지난해부터 10여차례 월드컵,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손연재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생글생글 웃던 손연재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연기를 계속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난감한 순간,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손연재를 향해 막 연기를 마치고 나가던 가라예바가 자신의 리본을 던져주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우정의 손길'이었다. 손연재는 가라예바의 리본을 들고 가까스로 연기를 마쳤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끝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쳐보였다. 상심한 채 포디움을 빠져나오는 손연재를 가라예바가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아제르바이잔의 톱랭커인 가라예바는 이번 대회 개인종합 7위에 올랐다. 5위에 오른 손연재와는 지난해부터 러시아 노보고르스크에서 함께 땀흘려온 동료다. 아쉬움 속에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빛나는 우정에도 불구하고 이날 손연재의 리본 점수는 0점 처리됐다. 본인의 수구(리듬체조에서 쓰는 후프, 볼, 곤봉, 리본 등 도구)가 아닌 다른 선수의 수구를 썼다는 이유다. 자신의 대체수구를 썼어야 했다.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규정집(Code of points)에 따르면 수구가 부러지거나 망가질 경우의 규정이 정확히 명시돼 있다. 리본이 끊어지거나, 던져올린 곤봉이 높은 천장에 끼는 등 어이없는 변수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체수구 규정이다. '수구가 연기 도중 부러질 경우 연기를 중지하거나, 대체수구로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 대체수구는 경기장 주위에 배치한다. 개인선수는 1개, 단체는 2개까지 가능하다. 부러진 수구로 연기를 계속해서는 안된다. 연기를 중단하면 중단시점까지만 채점되며, 대체수구로 연기를 재개하면 수구를 놓쳤다가 다시 잡는 경우과 마찬가지로 간주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존재한다.

매트 근처에 예비용 리본(대체수구)을 하나 더 놓아뒀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순위가 곤두박질 치는 결선 무대에서 치명적인 감점은 막기 힘들었겠지만, 적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연기를 이어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전날 예선에서 후프(28.050점), 볼(28.250점), 곤봉(28.350점), 리본(28.250점) 등 전종목 28점대로 개인종합 5위에 오르며 전종목 결선행에 성공한 손연재는 이날 결선에선 부진했다. 후프(27.650점, 8위), 곤봉(27.700점, 7위)에서 27점대에 머물렀다. 볼에서 유일하게 28점대를 받아 8명 중 6위에 올랐다.

올림픽에선 종목별 메달이 없다. 후프, 볼, 곤봉, 리본 등 4종목 점수를 합산한 개인종합 메달 단 1개만이 존재한다. 한 종목에서의 실수가 다른 종목 연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위기 관리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것은 경험치다. '폭풍 성장'하고 있는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서 하룻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아찔한 위기'를 통해 또 한번 배웠다. 4년의 노력과 기다림이 1분30초의 연기 한번에 결정되는 올림픽 무대를 앞두고 좋은 경험을 했다. 실전이 아닌 과정에서의 실패는 '약'이 된다. 최근 월드컵시리즈에서 2연속 메달 획득, 전종목 결선진출에 성공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손연재에게 타슈켄트 리본의 아픔은 메달보다 귀한 약이 될 것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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