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한 발만이 남았다. 2위와의 점수차이는 불과 1.3점. 자칫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역전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부담감에 벌벌 떨었을 것이다.
비결은 '강심장'이었다. 대범하고도 자신감있게 총을 쐈다. 2위 그룹의 맴추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진종오의 '강심장'은 그냥 길러진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영광에 이를 수 있었다. 진종오의 '강심장'을 만든 세가지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섬세한 남자
|
진종오는 무척 섬세하다. 일화가 있다. 훈련 중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꼭 다른 신발을 신고 간다. 훈련이나 경기를 할 때 사용하는 운동화는 절대 구부리지도 않고 신고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땅을 짚고 서있는 감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손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2010년에는 독일로 넘어가 자신이 직접 고안한 총 손잡이를 만들었다. 최대한 자신의 감각을 총에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였다.
든든한 버팀목 김선일 감독
|
진종오가 금메달을 따고 나서 가장 먼저 찾은 이는 김선일 남자 권총 감독이었다. 둘은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진종오와 김 감독의 인연은 2002년 시작됐다. 국내 최고의 권총잡이였던 김 감독은 당시 부동의 국가대표였다. 국가대표 생활 마무리를 준비하던 때 진종오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태릉선수촌내 룸메이트가 됐다. 김 감독은 자연스럽게 '방장', 진종오는 '방졸'이 됐다. 진종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 감독은 진종오와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2003년 김 감독은 현역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국가대표팀 코치로 변신했다. 진종오를 본격적으로 조련했다. 초반에는 김 감독의 성격상 진종오를 거칠게 몰아쳤다. 진종오는 아무런 군말 없이 잘 따라왔다. 이 때부터 진종오의 성적은 급속히 발전했다. 이듬해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진종오는 50m 은메달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는 50m 금메달, 10m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김 감독은 진종오에 대해 지도 스타일을 바꾸었다. 믿고 맡기기로 했다. '방목'이었다. 믿음을 주자 진종오는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침착했다. 김 감독은 "오늘은 (진)종오가 너무나 커보였다"며 후배를 극찬했다.
아테네의 아픔
뼈아픈 기억도 있었다. 2004년 아테네였다. 남자 50m 권총 결선이었다.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7번째 격발에서 6.9점을 쏘는 실수를 했다. 눈앞에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는 팡웨이(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에 그쳤다.
최악의 실수가 반전의 발판이 됐다. 이후 진종오는 자신을 추스렸다. 한 발의 소중함을 몸에 새겼다. 이날 마지막 발이 10.8점에 꽂힌 것도 아테네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종오는 경기 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사격의 정의는 '한 발'이다. 사격은 한 발씩 쏘는 종목이고 한 발 한 발이 소중하다. 또 그게 모여서 만점이 나오기 때문에 사격을 한 발로 정의하고 싶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