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탁구여제' 현정화가 돌아왔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총감독(강릉세계마스터스탁구선수권 집행위원장·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7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펼쳐진 국제탁구연맹(ITTF) 강릉세계마스터스탁구선수권 여자 단식 55~59세부 조별 예선에서 3전승하며 마스터스 챔피언을 향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조1위로 128강에 진출했다.
현정화라는 이름은 영화 '넘버3'에 나오듯 대한민국 탁구의 대명사로 통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 199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여자단식 금메달을 비롯해 전종목에서 4개의 금메달을 휩쓸었고,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등 세상의 모든 금메달을 다 가진 대한민국 여자탁구 유일의 그랜드슬래머이자 한국 선수 최초로 ITTF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레전드 중의 레전드다.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서 스포츠 행정의 중심에서 활약중인 그녀는 안방에서 열리는 강릉세계마스터스탁구선수권 집행위원장을 맡아 대회의 성공과 흥행을 위해 1994년 라켓을 놓은 지 무려 32년 만에 '선수' 복귀를 선언했다.
대회 출전을 공식화한 후 40일간 선수 복귀를 위한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 하루 1시간 이상 체력훈련, 탁구 훈련을 이어갔다.
이날 현 감독의 출전 소식에 대회에 전세계 탁구 동호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구름 갤러리가 몰렸다. 이태성 대한탁구협회장, 강문수 전 국가대표 감독,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대한탁구협회 부회장) 등이 일제히 응원전에 나섰다. 미국에서 온 아들 원준군도 엄마의 자랑스러운 도전을 응원했다. 벤치에는 박상준 한국마사회 감독과 채문선 전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 나란히 앉았다.
4명이 한 조를 이뤄 풀리그를 치른 후 조 1-2가 12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 현 감독은 덴마크 선수 출신으로 3번의 마스터스 대회에서 페트라 쇠링 현 ITTF 회장과 복식조로 나서 금, 은, 동메달을 따낸 피아 톨호이. 대한민국 생활탁구 선수 임혜숙, 궉추이린(아일랜드)과 한 조에 편성됐다. 쇠링 회장이 복식 파트너 톨호이의 벤치를 보는 진풍경도 나왔다.
오랜만의 실전, 챔피언의 부담감 속에 치른 첫 경기. 현 감독은 파이팅 넘치는 도전자 '경남 양산의 13년차 주부 동호인' 임혜숙과의 첫 경기에서 뜻밖에 고전했다. 몸이 풀리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탓인지 힘이 들어갔다. 1게임을 가볍게 잡아낸 후 2게임 듀스게임을 내준 후 3게임에서도 9-9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침착하게 위기를 넘긴 후 게임스코어 3대1로 승리했다. 현역 시절 세계를 제패한 날선 서브, 발빠른 전진 속공, 영리한 코스 공략에 "살아 있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엘리트 선수 출신들에게 마스터스 무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선수들의 빠른 박자, 강한 볼과 달리 생활체육 선수들의 구질과 박자는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현 감독은 경기 뒤 "생각보다 많이 깎이고 밀리고, 박자가 달라 당황했다. 선수들과 하는 경기와는 또 다르다"면서 "선수들은 서로 공격하려고 하는데 생활탁구는 연결도 많고 전혀 다른 구질이 온다. 다 치고 공격하려다 보니 범실도 나왔다. 내가 다 치려고 하기보다 연결도 좀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현 감독과 '인생경기'를 펼친 임혜숙씨는 "같은 그룹에 현정화 감독님이 계셔서 실은 당황했다. 동료들은 '좋겠다'며 부러워 했는데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편안하게 해주셨고, 어려운 서브도 안하시고 랠리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셨던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탁구 잘 치시네요'라는 현 감독의 칭찬을 언급하자 "아이들을 키운 후 동네 탁구장에서 10년 넘게 열심히 연습해왔는데 평생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이번 대회 대한민국 1호 선수로 등록했던 현 감독은 개막 전까지만 해도 "세계마스터즈는 1등 하려고 참가하는 대회가 아니라 세계 탁구인들의 축제이자 화합의 장"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날 뜨거운 응원전 속에 치러진 예선전 직후 눈빛이 바뀌었다. "일단 1등 해야 된다. 1등 한다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했다.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부터다. 현 위원장이 출전하는 여자 55~59세부 단식 본선은 9일 128강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한국 생활탁구 최강자로 꼽히는 선수 출신 노미화씨, 세계마스터스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했던 방정화씨 등 동년배 한국 최강자들과의 치열한 맞대결이 예고돼 있다. 20대에 세상의 모든 메달을 다 가진 '불굴의 레전드' 50대 현정화가 대한민국 강릉에서 위대한 마스터스 챔피언 도전을 이어간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