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베테랑 리베로 정민수는 2일 의정부 경민대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원정경기에서 유독 몸놀림이 가벼워보였다. 상대 강서브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팀 후방 라인을 지켰다. 정민수의 활약 속에 한국전력은 강호 KB손해보험을 세트스코어 3대0으로 완파했다. 2라운드 파죽지세로 상위권 팀들을 위협하게 됐다.
정민수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경기. 그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KB손해보험이 한국전력에서 뛰던 스타 임성진을 FA로 영입했고, 정민수는 그 보상 선수로 한국전력으로 향했다. 배구는 FA 영입 선수 포함 보호 선수를 5명밖에 묶을 수 없다.
사실 주전 리베로 정민수는 무조건 보호 명단에 포함될 선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은 지난해 말 상무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도훈을 생각해, 정민수를 보호 명단에서 전략적로 풀었다. 즉시 전력이 필요했던 한국전력은 쾌재를 부르며 정민수를 지명했다. 배구계에 엄청난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KB손해보험 시절 정민수 유니폼 입고 응원하는 배구팬.
선수 본인에게는 큰 상처일 수 있었다. '구단이 나를 어떻게 이렇게 버리나'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8년 KB손해보험 입단 후 없어서는 안 될 간판 선수로 활약해왔다.
그래서인지 정민수는 1라운드 첫 맞대결에서 KB손해보험을 상대로 꼭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팀도 패했고, 자신도 부진했다. 하지만 2라운드 경기에서 설욕에 성공했다.
정민수는 "1라운드 때 너무 이기고 싶었다. 다른 경기보다 더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려 했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됐다. 1라운드 내가 잘했다면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상대 서브를 받아내지 못했다. 부담감이 많았다. 그래서 2라운드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물론 절대 지고싶지 않았다. 절실하게 했다"고 밝혔다.
11일 의정부 경민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배구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의 경기. 친정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고 있는 한국전력 정민수. 의정부=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11.11/
정민수는 "솔직히 의정부에 오면 아직 내 집같다. 팬분들 얼굴만 봐도, 한 분 한 분 다 기억이 난다. 아직도 내가 KB손해보험 선수인 것 같기도 하다. 의정부에 오면 감정적으로 힘들다. 100%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1라운드 경기 전 구단에서 환영 행사를 해주셨는데, 그래서 더욱 울컥했고 경기에서 흔들렸다. 물론 너무 감사했지만,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정민수는 마지막으로 "2라운드 경기에서 잘했지만, 앞으로도 의정부에서는 내 감정을 100% 이겨내지는 못할 것 같다. 의정부를 정말 사랑했다. 팀을 옮기고도 KB손해보험을 응원했다. 선수들이 다 내 새끼들 같다. 올해는 우리가 우승하고, 다음에는 KB손해보험이 우승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와 할 때만 못했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히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