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타자'는 팀 타선을 대표하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4번 타순에서 활화산 같은 폭발력이 터져나오면 팀 타선 전체의 파괴력도 그만큼 막강해진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KIA 타이거즈는 '강한 4번'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FA로 이적해 온 최형우가 시즌 내내 제 몫을 단단해 해줬다. 그는 올 시즌 새 팀에서 27일까지 137경기에 나와 타율 3할4푼5리, 26홈런, 120타점으로 몸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9월 들어 최형우의 맹타가 잦아들었다. 27일까지 나온 20경기에서 타율은 2할2푼2리, 홈런은 1개, 타점은 8개 뿐이다. 덩달아 KIA 역시 시즌 막판 예상치 못한 난관을 겪고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두산 베어스에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처지. 27일까지 1경기 차 간발의 리드를 이어가고 있는데, 정규시즌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위기가 최형우 혼자만의 부진 때문에 벌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타선의 중심이자 상징인 최형우가 좀처럼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꽤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최형우의 진짜 힘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정규시즌 우승만을 위한 건 아니다. 더 큰 그림이 있다. 2009년 이후 9년만에 KIA가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4번타자' 최형우의 재각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은 정규시즌에서 타격 페이스를 상승 무드로 올려놔야 포스트시즌에서도 클러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부진하다고 해서 대안을 모색할 수도 없다..
어떤 선수든 시즌을 치르는 과정에서 슬럼프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슬럼프는 때를 가리지도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 하필 시즌 막판에 이런 시기를 겪는다는 게 최형우와 KIA에는 불운한 일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좌절하거나 필요이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슬럼프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여유있게 자신을 관조하는 것이 현재의 최형우에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최형우는 지금까지 매우 좋은 활약을 펼쳐왔다. FA 이적 첫 해에 '3할-25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한다는 건 기념비적인 기록이다. 이승엽 김태균 등 KBO리그 대표 4번 타자들도 이런 업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이 활약 덕분에 지금의 KIA가 우승 근접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최형우는 좀 더 자신을 믿어도 된다. 또한 벤치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최형우의 재각성을 도와야 한다.
더불어 KIA 팬들의 성원도 더욱 필요하다. 최형우가 지금 부진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다. 슬럼프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절실한 데, 팬의 성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가 과거에 했던 팀 순위 관련 인터뷰를 빌미로 그를 비난하는 건 이성적이지 못하다. 다소 경솔한 면이 없지 않았어도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최형우의 기가 살아야, 그의 타격이 돌아와야 KIA가 우승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야 말로 팬의 도움이 절실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의 심기일전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