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리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라고 불리던 두산 베어스가 휘청이고 있다. 지난 10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또 1대4로 지며 시리즈 전적 2승3패를 기록했다. SK가 이제 남은 두 경기에서 한 판만 따내면 정규리그 14.5경기 차이를 뒤집고 우승하는 역대급 업셋 시리즈를 완성하게 된다.
두산의 이 같은 부진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산답지 않은 야구를 하고 있다."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타격은 짜임새와 팀 배팅이 없고, 수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투수진이 버터주지면 그 또한 몇몇 선수에만 한정된 이야기다. 벤치는 수없이 발생하는 위기 상황이나 승부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정규리그 때 나오지 않은 모습들이다. 한 두 경기에 그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시리즈 내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준비 부족' 혹은 '지나친 자만심'을 지적할 수 있다. 워낙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친 후유증일 수도 있다. '누가 올라오든 우리한테는 안돼'라는 생각 때문인지, 매 경기 적절한 전술 변화보다는 초지일관 힘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마저 나온다.
그런 분위기는 1~5차전 내내 대동소이한 선발 라인업에서 확인된다. 두산은 1차전부터 5차전까지 거의 동일한 선발 라인업을 들고나왔다. 지난 4일 1차전때 '허경민(3)-정수빈(중)-박건우(우)-김재환(좌)-양의지(포)-최주환(지)-오재일(1)-김재호(유)-오재원(2)'로 출발해 3대7로 졌다. 똑같이 7안타였지만, SK는 타순 전체적으로 골고루 퍼져있었고 특히나 결정적인 순간 2개의 홈런이 터지며 7점을 뽑았다.
반면 두산은 정수빈(3안타)-최주환(2안타)에게만 집중돼 있었고, 찬스에서 중심 타선이 부진했다. 박건우는 5타수 무안타, 김재환은 4타수 1안타에 그쳤다. 8번 김재호는 3-5로 뒤지던 7회말 1사 만루의 황금 같은 찬스에서 허무하게 병살타로 물러났다.
2차전에서는 타자들이 좀 터졌다. 타순은 7번 오재일과 8번 김재호만 서로 바꿨을 뿐이다. 박건우와 김재호는 여전히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4번 김재환이 3안타(2루타 2개)로 살아난 점이 고무적이었다. 이럴 때는 타순을 밀어붙인 김태형 감독의 '뚝심'이 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3차전부터 변수가 발생했다. 4번 김재환이 옆구리 통증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라인업 변동이 불가피해진 것. 하지만 김 감독은 라인업을 그다지 흔들지 않았다. 허경민-정수빈-박건우를 고정했고, 4번에만 타격감이 좋은 최주환을 6번에서 올려놨다. 그 뒤로 변함없이 양의지가 있었고, 오재일과 김재호가 하나씩 위로 올라왔다. 8번 자리에 정진호를 투입한 건 김재환이 빠진 외야수비를 맡기기 위해서다. 이 경기에서 두산은 8안타로 2점 밖에 내지 못했다.
3차전까지 진 뒤에야 라인업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4차전에서는 테이블 세터만 놔두고 다른 타순들에 전부 변화가 있었다. 클린업으로는 최주환-양의지-김재호가 처음 나왔고, 6번은 박건우가 받쳤다. 그 뒤로 오재원-오재일-백민기가 나왔다. 백민기는 깜짝 카드였는데 2개의 안타를 쳐 김재호(4타수 무안타)-박건우(3타수 1안타)보다 차라리 나았다. 이날도 11개의 안타를 몰아쳤지만, 8회에 나온 정수빈의 '행운의 2점 홈런' 덕분에 간신히 2대1로 이길 수 있었다. 공격의 효율성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5차전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재일 대신 류지혁이 1루 수비를 맡았고, 전날 2안타를 친 백민기 대신 다시 정진호가 좌익수비로 나선 정도다. 8안타에 5볼넷을 얻었지만 득점은 단 1점에 그치며1대4로 졌다.
어떤 타자들의 경우, 정규시즌 내내 잘했더라도 단기전에서는 다소 부진할 수 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한결같은 믿음을 보내며 같은 자리에 계속 기용하거나 혹은 타순 조정이나 휴식 부여 등으로 다시 좋은 리듬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결과가 증명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김태형 감독의 일관된 라인업은 '뚝심'의 측면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특히나 김 감독은 정규리그 때는 다양한 라인업을 들고 나온 인물이다. 올해 144경기에서 무려 127개의 선발라인업을 활용했다. 이는 129개의 SK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SK는 여전히 자유로운 라인업 변화로 단기전에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두산은 정규리그 때와 달리 운용의 다채로움이 사라진 듯 하다. 과연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 6차전에는 어떤 전략이 등장하게 될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