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호재가 없었다.
흥행가도를 이어오던 A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참패했고, 흥행을 견인해야 할 서울과 수원은 오프시즌 내내 이렇다할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이슈메이커' 최강희 감독마저 중국으로 떠났다. 여기에 1일은 연휴의 시작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연휴 기간 내내 전국이 고농도 미세먼지로 비상이 걸렸다. '나쁨', '최악' 단계를 오가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비상 문자가 이어졌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최악의 미세먼지도 축구팬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6경기에 무려 7만9355명의 관중이 몰렸다. 축구도시로 거듭난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무려 2만637명의 관중이 몰린 것을 비롯해 각 구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천-제주전이 열린 인천축구전용구장에는 1만8541명이 관중석을 메웠다. 2012년 수원전에서 기록한 인천축구전용구장 이전 후 최다관중 기록(1만7262명)을 경신했다. 울산월드컵경기장엔 1만3262명, 수도권을 덮친 최악의 미세먼지 속 서울월드컵경기장에도 1만5525명의 관중이 자리했다.
K리그에서 가장 잠잠한 경기장으로 불리는 창원축구센터에도 6018명, 상주시민운동장에도 5372명이 들어섰다. 6경기 경기당 평균 관중 1만3226명으로, 지난해 대비 44.7%가 증가한 수치다.
매년 개막 라운드에 많은 관중이 찾기는 했지만, 올해는 유독 증가세가 눈에 띈다. 특히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돈을 내고 직접 경기장을 찾은 유료관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미세먼지 속에서도 팬들을 축구장으로 부른 원인이 분명히 있다. 이는 향후 K리그 흥행을 위해 분석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기도 하다.
가장 먼저 볼 것은 '스타 효과'다. 올 겨울 대어급 선수들의 이동이 활발했다. 이 중에는 빅리그를 경험한 거물 외인 영입도 있었다. 이웃나라 중국, 일본이 세계적 스타를 영입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K리그 팬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7시즌이나 소화한 조던 머치의 입단 당일, 조던의 이름은 하루종일 검색어 순위에 올랐을 정도.
1일 경기를 치렀던 전북, 울산, 경남은 모두 활발한 겨울을 보낸 팀들이다. 전북은 조제 모라이스 감독이 부임하며 새로운 축구에 대한 기대감을 줬다. 문선민 한승규 최영준 등 새로운 얼굴들도 대거 입단했다. 울산은 김보경 신진호 윤영선 등 전현직 국가대표 자원을 대거 데려오며 '폭풍영입'의 선두주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경남은 앞서 언급한 조던을 비롯해 빅리그 경험이 풍부한 룩 등 스타들을 대거 더했다. 둘째날 새로운 기록을 세운 인천 역시 마찬가지다. 늘 선수를 뺏기기만 했던 인천은 문창진 허용준 이재성 등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인천 관계자는 "프리시즌 동안 선수 보강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 개막전을 앞두고 표가 폭발적으로 팔린 것은 그러한 기대감의 발로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각 구단들의 '의식 변화'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올 시즌을 앞두고 각 구단과 통화를 해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느껴졌다. 이전에 관심이 성적에 매몰돼 있었다면, 올 시즌을 앞두고는 관중 유치쪽에 더 관심을 갖더라. K리그 구단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관중을 더 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경남과 상주가 그랬다. 지난 시즌 성적에 초점을 맞춘 경남은 올 시즌 관중동원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시설적으로 대폭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전보다 더 적극적인 홍보 활동도 펼쳤다. 비인기구단 상주 역시 지역민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에 나서며 흥행 대박에 성공했다.
각 구단들의 의식 변화는 동계 기간 동안 SNS 홍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SNS를 통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팬들에게 알렸다. 케미와 브로맨스를 강조하는 등 요즘 팬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를 잘 맞췄다. 개막 전 각 팀들이 하는 출정식 역시 전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전 출정식이 대표, 혹은 구단주의 인사말 등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면, 지금은 팬미팅에 가깝게, 축제처럼 진행된다. 철저하게 팬의 니즈에 맞춰 진행된다. 물론 선수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팬들의 피드백에 반응해준다. 구단과 선수들 모두, 한 명의 팬이라도 더 경기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한 경기씩 끝났을 뿐이다. 그래도 분명 고무적인 것은 K리그가 살아남기 위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