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패배'. 이탈리아 언론의 반응이다. 정작 유벤투스 구단 내부에선 아약스전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유가 있다. 상대가 돌풍을 넘어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약스이기 때문.
안드레아 아그넬리 유벤투스 회장은 17일 유벤투스-아약스 간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마치고 "아약스는 바이에른 뮌헨을 괴롭혔고,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를 탈락시켰다. 준결승 진출 자격이 있다. 패배는 물론 실망스럽지만, 때때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아약스를 보면 몇 년 전 AS모나코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2016~2017시즌 모나코는 16강과 8강에서 각각 맨시티와 도르트문트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유벤투스를 합산 스코어 3대2로 무찌른 지금의 아약스처럼 베르나르두 실바, 벤자민 멘디(이상 맨시티) 킬리안 음바페(PSG) 토마 르마(아틀레티코마드리드) 파비뉴(리버풀) 티에무에 바카요코(AC밀란) 등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당시 모나코는 베테랑이 다수 포진한 유벤투스에 가로막혀 결승까지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그넬리 회장은 8강 두 경기를 통해 아약스의 결승 진출, 나아가 우승도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걸 느꼈단다. 그는 "아약스가 진짜 우승후보로 거듭났다"고 했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다크호스가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드물게 있었다. 2003~2004시즌 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끌던 FC포르투가 예상을 깨고 깜짝 우승했다. 1994~1995시즌 AC밀란을 꺾고 우승한 '선배 아약스'도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결승골을 터뜨린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를 비롯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시도르프, 마크 오베르마스 등이 베테랑들과 조화를 이뤄 챔피언스리그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대이변을 만들어냈다. 아약스 유스 산물인 마타이스 데 리트와 프렌키 데 용과 베테랑 두산 타디치, 달레이 블린트 등이 뒤섞인 현재의 팀과 구성이 엇비슷했다.
올해 열 아홉살인 주장 데 리트는 아약스가 마지막으로 준결승에 오른 1997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아약스는 성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유스를 1군 주전급 선수로 키워내는 전통을 유지했다. 전설 요한 크루이프 전 감독의 유산이다. 막대한 이적료를 쏟아부어 팀을 완성하는 빅클럽과는 다른 행보로 4강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상대팀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이유다.
막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유벤투스 감독은 "아약스는 뛰어난 선수들을 여럿 보유했다.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다. 레알을 종합 5대1로 격파한 팀을 어떻게 언더독이라고 칭할 수 있겠나. 우리 역시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상대를 추켜세웠다. 이날 동점골을 넣은 데 리트는 "우린 레알과 유벤투스를 연파했다. 우승, 안 될 게 뭐 있나?"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아약스가 빅이어(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기 위해선 앞으로 두 팀만 더 넘으면 된다. 5월 초, 맨시티-토트넘 승자와 준결승을 치른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