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레바논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4일(한국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4차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지난 북한전 0대0 무승부에 이어 또 한번 무기력한 모습 끝에 두 경기 연속 무승부를 거뒀다. 불안정한 현지 사정, 갑작스러운 무관중 경기, 열악한 환경 등 최악의 분위기 속 치른 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답답한 경기였다.
벤투호는 스리랑카전 8대0 대승을 제외하고 치른 세 번의 원정경기에서 모두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은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레바논을 상대로 밀집수비 해법을 찾지 못했다. 팬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다시 한번 중용된 핵심 미드필더 황인범(밴쿠버)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황인범은 벤투호의 플랜A인 4-1-3-2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황인범은 내내 불안한 터치와 정교하지 못한 패스로 공격의 맥을 끊었다. 황인범은 결국 후반 시작과 함께 황희찬(잘츠부르크)으로 교체됐다. 황인범은 자타공인 '벤투의 남자'다. 벤투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A대표에 선발된 황인범은 이후 줄곧 중용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예선에서도 스리랑카전을 제외하고, 부진했던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레바논전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공교롭게도 벤투호는 황인범이 뛴 세 경기에서 모두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팬들은 '한번 중용한 선수를 끝까지 믿는 벤투 감독의 완고함이 경기를 망쳤다'고 한다. 차라리 '이강인(발렌시아)이 그 자리에 들어갔더라면' 하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기술적으로나, 공격적으로나 이강인이 황인범 보다 나은 카드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황인범을 중용하는 이유가 있다. 전술적 이유다. 알려진대로 벤투 감독은 밸런스를 중시한다. 부임 후 4-2-3-1을 줄곧 내세웠던 이유다. 이때만 하더라도 황인범의 자리는 주로 2에 해당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아시안컵 이후 밀집수비 타파를 위해 공격숫자를 늘리고 싶었던 벤투 감독은 4-1-3-2로 플랜A를 바꿨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명을 배치했지만,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고 싶었던 벤투 감독은 황인범을 3 자리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두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센스와 기동력이 좋은 황인범을 가운데에 배치해 유기적인 플레이를 노림과 동시에 황인범의 수비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황인범은 평가전에서 벤투 감독의 의도대로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중원의 밸런스를 잘 지켰다. 특히 지난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백승호(다름슈타트)가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데에는 황인범의 엄청난 커버가 한 몫을 했다. 황인범은 공격형 미드필더에 자리하지만 실질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공수를 조율한다.
한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수비 안정감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 속, 수비력이 떨어지는 이강인을 선뜻 투입하기 어렵다.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최약체 스리랑카전을 제외하고, 상대 역습의 부담이 있는 세 번의 원정 경기에서 모두 황인범을 중용한 이유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간과한 것이 있다. 상대가 훨씬 더 내려서서 플레이했다는 사실이다. 수비력이 좋다고 해도 황인범의 자리는 어디까지나 공격형 미드필더다. 공격을 풀어나가야 하는 황인범이 패스 미스를 반복하면 당연히 공격 템포와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밀집수비를 펼치는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는 볼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에서 첫 시즌을 마무리한 황인범은 좋지 않은 컨디션 속 특유의 센스 있는 플레이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황인범은 아직까지는 상대의 밀집수비에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벤투식 축구의 핵심을 맡고 있는 황인범의 부진이 이어지며, 벤투 감독의 고민도 더욱 커지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