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오정세(42)가 임상춘 작가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동안은 누군가를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2000년 영화 '수취인불명'의 단역으로 데뷔한 오정세는 20여년에 이르는 배우 생활을 거치며 7년간 무명배우 생활을 했다. 그동안에도 영화 '코리아'(2012), '시체가 돌아왔다'(2012)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비췄고,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MBC '보고싶다'(2012)의 주형사로 주목을 받고, 영화 '남자사용설명서'(2013)에서는 주연을 맡으며 시청자들과 관객들에게 나란히 오정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긴 시간을 지나오며 오정세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특히 최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임상춘 극본, 차영훈 연출)에서는 차기 옹산 군수를 꿈꾸는 '철없는 남자'이자 'NO규태존'을 만든 장본인 노규태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을 가끔은 분노하게 만들고 자주 웃게 만들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을 깨우는, 촌므파탈 황용식이의 폭격형 로맨스 드라마로, 오정세는 초반의 악역이자 후반의 선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으며 21일 종영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23.8%(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올해 방영된 지상파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에 해당한다.
오정세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프레인TPC 사옥에서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정세는 임상춘 작가의 대본을 향해 "완벽했다"는 극찬을 쏟아냈다. 그가 보여준 연기의 대부분은 95%가 완벽한 대본에서 나오고, 5%가 현장의 애드리브로 꾸며졌다는 것. 오정세는 "95%가 대본, 나머지 5%가 심사숙고해서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온 OK신들로 채워졌다. 애드리브라고 한다면, 취조실에서 거짓말 탐지기로 '아내를 사랑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까지가 대사였고, 충분하게 마음이 다 전해졌는데도 제 입에서 한 마디가 더 나오더라. 고민을 하다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까멜리아 간판의 문구를 넣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규태와 자영이가 까멜리아와 동백으로 인해 이별을 했지만, 결국 이들도 성장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어서 까멜리아의 간판으로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시청자 입장'에서 '동백꽃 필 무렵'을 지켜봤다는 오정세는 매 신마다 소리를 지르며 볼 정도로 깊게 빠져들었단다. 오정세는 "시청자 입장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두서없이 생각이 날 정도로 너무 많다. '네가 먼저 했다'고 하던 용식이와 동백이의 키스신도 소리를 지르며 봤고, 홍자영의 드리프트 뒤 '드리프트 타떠'라고 하는 장면도 잘 써주신 것 같다. 변명을 하는 규태도 어떻게 그런 대사를 써주셨는지 모르겠더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간암에 걸려서'라고 했다가 '대장암인데 즉사했어'라고 변명하는 규태도 다 명대사였다. 자영이에게 하는 한 마디인 '미안해 엄마 만들어서. 너도 여자하고 싶었을 텐데' 이런 것도 다 주옥같았다. 제가 봤을 때에는 95%가 대본이었고, 지문이나 이런 것들이었다. 후드 키스신도 '너희가 의상을 이렇게 했나 보다'라고 했는데 다 대본에 '후드 끈을 당기며'라고 써있었다"고 말했다.
이 완벽한 대본을 구현하기 위해 "대본과 나의 싸움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신경을 썼던 오정세는 "이렇게 완벽한 대본은 불편하지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본이 완벽한 쪽이 훨씬 더 좋다. 디테일함에 '기분이 좋음'으로 시작해 '이런 디테일 너무 좋다'가 된다. 사실은 스트레스고 저와의 싸움이지만, 이렇게 좋은 것들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완벽한 대본 속에 저의 자유로움이 5% 섞이니 더 좋았다"며 "디테일에 감탄한 부분도 정말 많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오정세는 "디테일한 지점에 많이 놀랐다. 향미가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라고 하는데, 규태가 어색한 웃음을 짓는 장면이 있다. 그걸 작가님이 글로 어떻게 썼냐 하면, 'ㅎㅎㅏ ㅎㅎㅣ 하유히' 이런 식으로 써 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다른 '하하하'를 찾으려 고민을 많이 했다. 옹벤저스의 문자 오타들도 전부 대본에 있었고, 까멜리아의 치부책도 정말 웃겼다. 방송에 나온 것은 일부지만 실제로는 10건이 넘게 있었다. '샴푸 냄새가 좋다며 킁킁거렸다', '나보고 반갑다며 웃었는데 윗입에 고춧가루가 껴서 불쾌했다'라고 하는 내용도 다 써있었다. 흥식이의 일지도 그냥 지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 밑에 글이 있는 상태에서 지운 것이다. 다들 '애드리브 아니야?'라고 했던 것들도 다 대본에 있는 거였다. 대본에 '빙수 먹고 가'라는 대사도 '나'를 하나 넣어 '빙수나 먹고 가'라고 하니 느낌이 완전 달라졌다. 한끗 차이인데도 잘못 갈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고 말하며 대본의 완벽한 디테일에 감탄했다.
이런 좋은 대본과 함께였기 때문에 '동백꽃 필 무렵'의 배우들은 돈독했다. 특히 눈물바다로 변했던 MT의 추억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오정세는 "다같이 울었다. 눈물바다였다. 마지막 방송이 슬퍼서 운 건지, 아니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지점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들 애정을 가지고 임해서 눈물이 터진 것 같았다. 스태프들도 다들 사람들이 하는 작업이니 부딪힘이 있었을텐데 저희도 화가 나다가도 다음 대본이 나오면 마음이 사악 가라앉았다. '내가 이런 좋은 작품을 하고 있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달려오니 웃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동백이가 마지막에 한 명씩을 안아주며 울고 가고 토닥여줬는데, 10년을 넘게 알면서 처음 작품을 함께 해본 저에게도 '오빠 우리가 이런 작품을 하려고 그랬나 보다'하면서 안아줬다. 그때 제가 규태가 된 거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임상춘 작가는 오정세에게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다. 임상춘 작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지만, 이를 숨겨주고 싶다는 것. 오정세는 "임 작가님은 덩치가 크고 키가 180cm에 수염이 난 사람이다"라며 농담한 뒤 "그분의 정서 상 나서는 것이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냥 '수염이 났어요'라고 말해드리고 싶은 작가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를 알겠더라. 오롯이 글만 쓰고 싶은 정서인 것 같아서 제가 지켜드린다고 지켜드릴 수 없지만, 그러고 싶은 작가님"이라고 했다.
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며 임상춘 작가와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오정세는 "당연히 달려온다"면서 "만약 다른 작품과 동시에 겹쳐 그쪽에 이미 도장을 찍어버린 상태라면, 저는 임상춘 작가님의 작품 엔딩 크레딧의 가장 마지막 줄의 인물이라도 하고 싶다. 마을 47번째 사람 수준의 단역이나 엑스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은행 기다리는 남자1' 이런 것도 해보고 싶고 '대기인 46' 이런 것도 좋다. 저는 어디 가서 '정말 좋다'는 말을 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사람인데, 이번 작품은 달랐다. 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들 잘 찍고 있냐고 물으면 '어 너무 행복하게 찍고 있어'라는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동백꽃 필 무렵'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간직했다.
'동백꽃 필 무렵'으로 '오정세 필 무렵'을 완성한 오정세는 차기작을 일찌감치 정하며 촬영에 들어갔다. 그의 차기작은 SBS '스토브리그'로 극중 구단을 해체시키려는 계획을 가진 구단주 권경민으로 분해 극에 녹아들 예정이다. '스토브리그'는 12월 13일 첫 방송된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