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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한국축구 희로애락, 박지성으로 시작해 손흥민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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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한국축구에 201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공을 들인 유스시스템이 성과를 거두며 연령별 대표팀은 연일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정작 A대표팀은 무섭게 성장한 아시아의 벽에서 고전했다. 이 과정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세대가 저물고 새롭게 런던-리우올림픽 주역들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연령별 대표의 성과로 군면제 혜택을 얻은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 세계 무대에서 한국축구의 경쟁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축구의 젖줄인 K리그는 내홍과 중국-일본의 거대 자본 속 고전을 거듭하다 최근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다사다난했던 한국축구의 2010년대를 희로애락으로 정리해봤다.

▶희-원정 월드컵 첫 16강부터 FIFA 대회 첫 준우승까지

스타트는 화려했다. 2010년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남자 A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성공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박지성 이영표의 투혼 속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같은 해 여자 U-17 대표팀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우승이라는 신화를 썼다. 여민지는 대회 MVP에 올랐다.

2012년 한국축구는 또 한번의 새로운 고지를 밟았다. 홍명보 당시 감독이 이끌던 U-23 대표팀은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3, 4위전에서 일본을 2대0으로 제압하고 얻은 결과기에 더욱 짜릿했다. 같은 해 울산은 '철퇴축구'를 앞세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고 이광종 감독이 이끈 U-23 대표팀은 국내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8년 만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5년 당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던 남자 A대표팀은 호주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바통을 이어 받은 여자 A대표팀은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 역대 최고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6년 전북은 5년 만에 다시 한번 ACL을 품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침몰시킨 한국축구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축구의 봄을 불러왔다.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출전한 남자 U-20대표팀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남자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거머쥐며 2010년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강인은 골든볼을 수상하며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로-승부조작의 악령

2011년 한국축구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발생했다. 풍문으로 돌던 K리그 승부조작이 사실로 밝혀졌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국내 조직폭력배와 연계돼 승부조작을 벌였다. 일부 선수들은 직접 브로커와 승부조작을 모의하기도 했다. 프로축구연맹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법당국과 공조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일부 선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수십여명의 전현직 선수들과 브로커, 조직폭력배의 구속으로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K리그는 한동안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K리그는 또 한번의 대형 스캔들로 울었다. 2015년 경남이 심판 매수로 징계를 받은데 이어, 2016년 '절대 1강' 전북의 심판 매수가 뒤늦게 밝혀졌다. 소속 스카우트가 2013년 심판을 매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동안 쌓은 명성을 스스로 깎아먹었다. 승점 9점 삭감과 벌금 1억원의 징계를 받은 전북은 해당년도 우승을 놓쳤다. 이후 이 스카우트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자살하며 큰 충격을 줬다.

▶애-전설과의 이별, 그리고 명장들의 죽음

2011년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빛나는 별, 박지성과 이영표가 나란히 대표팀 은퇴를 택했다. 카타르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남아공월드컵까지 한국축구가 거둔 최고의 성과에는 어김없이 박지성과 이영표가 있었다. A매치 100경기, 127경기에 나서 한국축구의 공수를 이끈 박지성, 이영표 두 레전드의 은퇴에 한국축구의 세대교체도 빨라졌다.

2016년과 2017년 명장들이 세상을 떠났다. 협회 전임 지도자로 출발해 U-20 월드컵 8강,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드라마를 쓴 이광종 감독은 리우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지도자 생활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급성 백혈병으로 5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에는 부산을 이끌던 조진호 감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전년 도 상주를 상위스플릿으로 올리며 젊은 명장 반열에 오른 조 감독은 승격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부산 숙소에서 나오던 길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부산은 2019년 승격에 성공, 조 감독의 영전에 생전 그토록 원하던 승격을 선물했다.

▶락-박지성으로 시작해 손흥민으로 끝났다

한국축구, 최고의 즐거움을 안겨준 이들은 단연 해외파였다. 2010년대, 차범근 전 감독을 시작으로 간헐적으로 이어진 유럽진출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선봉장은 역시 박지성이었다. 사실 박지성의 전성기는 2000년대 후반이었다. 대표팀 경력을 2011년, 프로 생활을 2014년 마감하며, 2010년대에 긴 시간을 활약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에도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맨유, 퀸즈파크레인저스, PSV에인트호벤을 거친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유럽 침공에 앞장섰다.

'양박쌍용'의 주축인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이 유럽에 둥지를 튼 가운데, '리우세대' 구자철 지동원 윤석영 등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유럽진출 시기는 갈수록 빨라졌다. 황희찬 이승우 이강인 등은 일찌감치 유럽으로 떠나 현지화에 성공했다.

꽃을 피운 것은 단연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2010년대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2010년 함부르크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레버쿠젠, 토트넘을 거쳐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22위에 올랐고, 몸값 역시 1000억원을 넘은 지 오래다. 손흥민은 변방 한국축구에 '월드클래스'의 꿈을 꾸게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