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허상욱 기자] 영구결번은 프로야구 선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확실한 실력과 매너,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생활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다. KBO리그에선 14명의 선수들만이 영구결번 영예를 누렸다. KBO 최초의 영구결번은 1986년 사고사를 당한 당시 OB 베어스의 포수 김영신의 54번으로 비극을 추모하고 충격적인 사건의 재발을 막자는 의미에서 추진됐다.
긴 세월 동안 팬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그라운드에 등 번호를 남기고 떠난 스타들을 영구결번이 지정된 순서대로 모아봤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18번, 실질적인 영구결번 1호의 영광은 1996년 선동열이 차지했다. KIA는 2002년 '제2의 선동열'로 불리던 루키 김진우에게 18번을 달아주려 했으나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취소하기도 했다.
선동열은 설명이 필요없는 KBO 역대 최고의 투수다. 해태에서 11시즌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규정 이닝을 채우고 평균자책점 0점대(1986년 0.99, 1987년 0.89, 1993년 0.78)를 달성한 시즌만 3차례나 된다. 1996년 해태에서 일본 주니치로 현금 임대되어 떠난 직후 18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KBO 역사상 최초로 200세이브-100승을 달성했던 LG 김용수의 41번, '면도날'이라는 별명처럼 뛰어난 제구력과 포크볼을 주무기로 삼아 86~88년 구원왕, 90년과 94년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고, 16년 동안 126승 227 세이브, 평균자책점 2.98의 성적을 남겼다.
LG는 김용수가 은퇴하기도 전인 1999년 4월 19일 한화와의 홈경기때 '김용수 유니폼 넘버 41번'에 대한 영구 결번식을 열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사상 처음 정규리그 경기때 진행된 영구결번식이었다.
'불사조' 박철순의 21번,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와 22연승 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남겼다. 1996시즌을 마친 뒤 은퇴한 박철순의 등번호 였던 21번은 2002년 영구결번됐다.
박철순은 영구결번된 투수 중 유일하게 통산 100승을 올리지 못했다.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를 올렸다. 하지만 원년 OB 베어스의 우승을 일군 최고의 투수로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헐크' 이만수의 22번, 이만수는 1997년 삼성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그가 사용했던 등번호 22번이 영구결번으로 결정된 것은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2004년이었다.
이만수는 프로 원년인 82년부터 97년까지 줄곧 삼성 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 1호 홈런을 포함해 각종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84년 타율(0.340), 타점(80점), 홈런(23개) 부문을 모두 석권해 트리플 크라운에 오르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구장에 들어서면 관중석 한쪽에 걸린 '35번'과 '21번', '23번'이 눈에 들어온다. 한화의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과 '최다승 투수' 송진우 '에이스' 정민철이 선수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다.
'홈런왕' '연습생 신화' 장종훈은 1987년 연습생 신분으로 빙그레 유니폼을 입었고 90년대 홈런왕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린 후 은퇴 당시까지 통산 출전수, 타수, 안타, 홈런, 루타, 득점, 타점, 4사구, 삼진 등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18년간 한화의 마운드를 지킨 '에이스' 정민철, 1992년에 빙그레에 입단한 정민철은 16시즌 동안 한화에서 활약했고 통산 161승 128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을 남겼다. 송진우(210승)에 이어 프로통산 161승으로 최다승 2위, 370경기 선발 출장, 20 완봉승, 2천394⅔ 이닝 투구 등의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송골매' 송진우의 진가는 통산성적에서 더욱 빛난다. 2006년 8월 29일 광주 KIA전에서 통산 200승을 달성했고 2009년 4월 9일 대전 두산전에서 최초로 3000이닝을 돌파했다. 3000이닝은 송진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록이다. 통산 210승153패 103세이브, 방어율 3.51, 3003이닝. 64 완투 11 완봉, 2048 탈삼진.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전설의 기록들이다.
'푸른 피의 사나이' 양준혁의 10번, 데뷔 첫해인 1993년 타율 0.341의 고감도 타격으로 타격왕과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했던 양준혁은 18 시즌 동안 통산타율 0.316을 쳐냈다. 타석에 오를 때마다 타자 부문 기록을 새롭게 써내려갔다.
최초로 2000경기 고지를 밟은 양준혁은 2135경기에 출전해 7332 타수, 2318 안타, 2루타 458개, 홈런 351개, 1389 타점, 1299 득점을 기록했다. 여전히 양준혁의 기록들은 난공불락이다.
2011년 9월 30일, 롯데는 부산 사직구장에서 故 최동원을 기리는 추모 행사와 영구결번식을 가졌다. 9월 30일은 롯데와 투수 최동원에게 역사적인 날. 84년 9월 30일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롯데는 4대0의 완승으로 한국시리즈 첫 승을 따냈고, 최동원은 선발투수로 9이닝 무실점을 기록해 한국시리즈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최동원은 1983년 롯데에서 출발해 1990년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마칠 때까지 248경기에 등판해 103승 74패를 거뒀다. 평균자책점 2.46이었다. 2011년 9월 14일 무쇠팔 최동원은 세상을 떠났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7번,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종범의 빠른 발과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그가 2루에 있을 때 스퀴즈 번트작전 사인까지 나왔을 정도다.
1993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종범은 94년 MVP, 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16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97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 740타점 1100득점을 기록했다.
SK 구단 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인 박경완의 26번, 박경완은 역대 프로선수 중 가장 긴 23시즌을 뛰었다. 통산 2043경기, 1480안타, 314 홈런, 995 타점, 75 도루를 기록했다. 2000년 현대시절 40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MVP에 오르기도 했다.
박경완은 현대에서 뛰던 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4연타석 홈런을 최초로 기록한 바 있다. 홈런왕 2회, 골든글러브 4회 수상과 포수 최초로 300 홈런을 달성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평가를 받았다.
'적토마' 이병규의 등번호 9번, 1997년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병규는 LG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만을 입고 17년을 활약했다. 개인통산 1741경기, 2043안타, 타율 0.311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역대 4번째 2000안타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99시즌에는 잠실구장을 홈 구장으로 쓰는 선수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2013년 7월5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38세 8개월 10일의 나이로 최고령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의 등번호 '36번', 이승엽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4차례 우승, 1번의 MVP 그리고 정규시즌 MVP 5회, 10차례 골든 글러브에 선정됐다. 이승엽의 KBO 통산 기록은 타율 0.302, 1355득점, 2156안타, 467홈런, 1498타점, 57도루, 1055사사구, 2루타 464개, 3루타 28개다.
이승엽은 은퇴경기였던 2017년 10월 3일 대구 넥센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이자, 은퇴 시즌에 시즌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KBO리그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보다 더 극적인 은퇴경기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