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한동안 '순수 신인왕'을 보기가 힘들었다. 고교 졸업 후 프로 입단 1년차, 혹은 대학 졸업 후 입단 1년차 신인을 뜻한다. 2006년 류현진(한화, 이하 수상 당시 소속팀 기준) 그리고 2007년 임태훈(두산)을 마지막으로, 약 10년 동안 KBO리그는 '중고 신인' 천하였다.
2008년 신인왕을 수상한 최형우(삼성)는 무려 입단 후 7년이 지난 선수였지만, 1군 출장 기회가 극히 드물어 신인상 수상 요건을 채웠고 그해 최고 신인 자리에 올랐다. 그 이후 2009년 이용찬, 2010년 양의지(이상 두산), 2011년 배영섭(삼성), 2012년 서건창(넥센), 2013년 이재학과 2014년 박민우(이상 NC), 2015년 구자욱(삼성), 2016년 신재영(히어로즈)까지. KBO 신인상은 입단 3~5년 차에 빛을 본 선수들의 무대였다.
월등하게 눈에 띄는 '순수 신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와 프로야구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면서, 앞으로 더욱 순수 신인왕을 보기 힘들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입단 직후 1군에서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칠 기회를 잡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 다시 트렌드가 바뀌었다. 2017년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시작이었다. 휘문고 졸업 직후 키움에 입단해 시범경기부터 주목 받았던 이정후는 그해 주전으로 도약했고, 각종 신인 타자 기록을 갈아치우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7년 임태훈 이후 10년만에 탄생한 '순수 신인왕'이었다.
이정후 이후로도 쭉 1년 차 선수들의 수상이 계속됐다. 2018년 KT 위즈 강백호, 2019년 LG 트윈스 정우영에 이어 올해 투표에서는 KT 소형준이 압도적 지지를 얻어 신인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4년 연속 순수 신인들이 대세를 굳혔다.
지명 당시부터 기대를 모았던 고교 졸업생들의 활약, 그것도 수도권 학교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가 시너지를 일으켰다. 최근 4년간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들은 모두 수도권 고교 출신-상위 라운드 지명 출신이다. 이정후는 휘문고-키움 1차지명, 강백호는 서울고-KT 2차 1라운드 지명, 정우영은 서울고-LG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소형준 역시 수원 유신고 졸업 후 KT 1차지명 입단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중에서도 전학으로 인해 1차지명 대상자가 아니었던 강백호의 2차 전체 1순위 지명과 소형준의 1차지명은 KT의 지명 당시부터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교 야구생들의 수도권 과밀화와도 직결된다. 최근 중,고교 야구에서 좋은 선수들은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의 야구명문고를 중심으로 쏠림 현상이 극심하다. 자연스럽게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이고, 이중에서 최상위권 지명을 받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 구단들이 '같은 1차지명이어도 수도권팀과 평균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고 불평하는 이유다.
최근 신인상 수상자는 구단들이 처음부터 높은 기대를 안고 지명한 선수를 전략적으로 첫 시즌부터 경험치를 쌓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1군에서 자리잡게끔 만들어나간다. 이런 분위기가 신인왕 수상자를 결정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