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전력질주하면 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100m 기록은 준비운동하고 바로 뛰면 13초대는 나온다."
롯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느림보' 유강남이 상상초월 폭풍질주를 선보였다. 힘겹게 공보다 먼저 도달한 유강남은 그대로 홈플레이트 위에 누워버렸다.
'80억 포수' 유강남은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구단과 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올해 유독 포수들의 공격력이 돋보인다. LG 트윈스 박동원은 2004년 박경완 이후 19년만의 포수 홈런왕을 정조준하고, 두산 베어스 양의지는 여전히 막강한 공수 겸장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38세 강민호(삼성 라이온즈)도 타율 3할, OPS(출루율+장타율) 0.8, 8홈런 33타점의 나이를 잊은 활약 중이다. 11일 롯데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도 강민호였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한화 이글스 최재훈, KT 위즈 장성우, NC 다이노스 박세혁도 만만치 않다. 유강남의 올해 포수중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 순위는 무려 10번째다.
롯데에서 유강남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구위 중심의 투수가 많고, 포크볼러가 팀 전통인 팀이다. 유강남은 최근 5년 연속 130경기 이상을 소화한 '금강불괴'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4년 80억원이란 금액에는 20홈런 이상의 장타력에 대한 기대도 담겨있다. 타율 2할3푼7리 1홈런, OPS 0.622의 성적표가 본인 스스로도 만족스러울리 없다.
유강남은 이날 낮2시쯤 시작된 특타에 참여했다. '고생이 많다'는 인사를 던지자 "전 지금 뭐라도 해야한다. 열심히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겸 자이언츠 구단주가 직접 사직구장을 찾았다. 랍스터와 전복 등이 포함된 고급 도시락이 주어졌다. 이날 롯데가 3시간 58분 혈투 끝에 7대5 승리를 거둔데는 '회장님'이 직접 추진한 몸보신의 공도 적지 않았다.
유강남은 한층 더 필사적이었다. 2회말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한 유강남은 황성빈의 적시 2루타 때 부지런히 뛰어 홈을 밟았다.
3회말에는 1루에서 홈까지, 보기드문 3베이스 전력질주를 선보였다. 앞서 윤동희의 3점 홈런으로 롯데가 5-3 재재역전에 성공한 상황.
투수 옆쪽으로 흐르는 땅볼을 쳤지만, 이를 한화 선발 문동주가 놓치면서 내야안타가 됐다. 글러브가 허공에서 볼을 더듬는 순간 유강남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마음이 급해진 문동주는 볼처리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한화의 바뀐 투수 이태양을 상대로 박승욱이 우익수 뒤쪽 펜스를 직격하는 3루타를 쳤다. 타구가 펜스를 때릴 때 유강남은 막 3루에 도달하는 참이었다.
홈송구가 빗나가면서 가까스로 세이프. 유강남은 그대로 홈플레이트 위에 누운채 숨을 몰아쉬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유강남을 래리 서튼 롯데 감독도 함박미소로 맞이했다.
롯데가 6-5, 1점차로 앞선 8회초 수비 때는 한화 박정현의 번트가 뜨자 온몸을 던져 잡아냈다. 롯데는 실점없이 수비를 마쳤고, 8회말 안치홍의 적시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 후 유강남은 구단 유튜브와의 인터뷰에서 "(박)승욱이 타구가 펜스에 맞을 것 같았다. 전력질주하면 홈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정말 힘들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윤동희에게 장갑이나 가드를 챙겨줬더니 좋은 결과를 내서 뿌듯하다"며 선배다운 속내도 드러냈다.
이어 '100미터 몇초에 뛰나'라는 질문에 "12초대?"라고 답한 뒤 잠시 망설였다. 유강남은 "50m 이야기 아니냐"는 선배 정 훈의 일갈에 파안대소한 뒤 "포수는 3이닝만 하면 다리에 쥐가 나고 피가 밑으로 쏠린다. 그냥 워밍업하고 뛰면 13초대는 나온다. 우리팀 느림보들 중에는 내가 제일 빠르다"며 강변했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