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 솔선수범 전통 의미
루스벨트 아들·케네디 맏형, 세계대전 참전해 산화
전두환 노태우 아들 '6개월짜리 석사장교', 사회 위화감
이재용 아들 해군장교 자진입대…"사회에 큰 울림 기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귀족은 의무를 진다'라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프랑스 혁명 때 활동한 귀족 출신 정치가 피에르 마르크 가스통이 1808년에 펴낸 <격률과 교훈>에서 처음 쓴 말로, 중세 유럽 봉건 영주의 농노 보호 의무에서 비롯됐다. 현대에 와서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넷째 아들 쿠엔틴은 1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독일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다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맏형 조지프는 폭격기를 몰고 독일군 요새로 비행하다 동체 결함으로 공중에서 산화했다.
6·25 전쟁의 영웅인 제임스 밴플리트 8군 사령관의 아들 제임스 주니어는 B-26 폭격기를 몰고 평양 폭격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부하들이 시신 수색대 출동을 건의하자 "더 급한 일이 많아"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죽은 지휘관의 아들이 수백명이었으니 고통을 내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희생은 미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기며 엘리트들의 솔선수범을 당연시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베트남에도 꽃다운 청춘들을 보낸 휴전국이지만, 유력 정치인과 재벌, 또 그들의 자제가 전장에 나가 싸운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신 권력을 앞세워 병역 면제와 특혜를 받는 게 관행으로 작동해왔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명색이 육군 대장 출신임에도 아들 전재국과 노재헌을 6개월 만에 소위로 전역하는 석사장교로 보냈다. 석사장교는 전재국의 입대를 앞둔 1982년에 도입되고 노재헌이 제대할 때인 1991년에 없어졌다. 두 대통령 말고도 재벌과 정치인, 교수 등 지도층의 많은 자제가 석사장교를 했다. 석사장교를 두고 '대통령 아들용' '있는 집 자식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배경이다.
아들 군대 빼는 게 상류층의 관행이라는 한국에서 귀를 의심할 만한 소식이 들린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아들 이지호가 곧 해군 장교로 입대해 39개월간 복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선천적 미국 복수국적자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도 시민권까지 포기했다니 더욱 놀라움을 준다.
아직 그가 군 생활을 잘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선하다. 이지호는 재벌의 자식이지만 남자라면 군대 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아들이다. 아버지 빽 대신 바다 수호를 택한 이지호의 자진 입대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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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