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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구의 재발견] ⑩ "정확한 진단부터"…내년 제주사구 체계적 보전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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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 해안사구는 바닷가와 그 주변 육상에 있는 모래 언덕 등 모래땅입니다. 해안사구는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모래 저장고이며, 거센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기후 위기를 막아 줄 '블루카본'의 저장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열풍 속에 제주를 비롯한 국내 많은 사구가 옛 모습과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제주의 해안사구를 중심으로 그간 크게 쓰임이 없는 모래땅으로만 여겨진 해안사구의 가치를 소개하고, 보전 방안을 찾아보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사구가 주는 혜택을 누리며 더불어 사는 방안을 찾으려면 우선 사구 현황을 정확히 진단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국내 해안사구 권위자인 서종철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지난 5일 연합뉴스가 전문가들을 초청해 마련한 해안사구 보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제주 해안사구가 어디에, 얼마만큼의 규모로 존재하는지를 이제는 말로 하면 안 되고, 분포지를 만드는 등 정량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서 전 교수는 제주도의회 한권 의원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몇 곳의 사구가 제주에 분포해 있는지, 각 사구의 분포, 생성 패턴과 유형, 훼손 정도, 자연 상태로 남은 정도는 어떠한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회복이 가능한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관리계획 수립 단계에서는 제주 각 사구의 경계를 찾고 사구 내에서도 해안지대, 모래지대, 수림지대, 습지지대 등 4개의 특성별로 나눠 동식물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수남 자연의벗 사무처장도 "자연환경은 물론, 사구와 사람과의 인문학 조사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모든 사구를 다 보호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해안에 가까운 해안사구와 내륙 깊숙이 섬처럼 남은 대형 사구들은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는 '제주도 해안사구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정에 따라 해안사구 보존위원회가 내년부터 운영되고 '해안사구 보전·관리 기본계획'도 추진될 전망이다.
국내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사구 관련 이 조례는 제주도의회 한권 의원(더불어민주당, 일도1동·이도1동·건입동)과 지역 환경단체의 오랜 노력 끝에 최근 제정됐다.
이 조례에는 국공유지 해안사구를 대부·매각·교환·양여 등이 불가한 행정재산으로 지정해 해안사구에 대한 민간 개발을 차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행히 현재 남아 있는 제주 해안사구의 약 78.4%(1.87㎢)는 국공유지로, 행정적 의지만 있다면 복원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평가다.
한권 의원은 "이 조례는 해안사구 보존위원회를 독립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했으며 주무 부서인 기후환경국 외에도 해양 부서, 세계자연유산본부 등 3개 부서가 모두 이 위원회에 참가하도록 해 위원회의 실행력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국공유지 해안사구에 대한 행정재산 지정 절차는 큰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선 제주도 주무 부서가 국공유지 소유의 해안사구를 조속히 파악해서 행정재산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해야 보전 관리를 좀 더 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조례는 또 도지사의 책무와 더불어 도민의 책무도 명시해 각종 홍보와 참여 활동을 통해 사구 보호에 함께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현재 제주 사구에 대한 공식 자료는 2017년 국립생태원의 조사 이후로는 마땅히 없는 실정이다. 국립생태원에서도 제주 사구에 대한 조사 계획이 없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도지사의 책무를 실행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아직 부족해 사구에 대한 기본계획 수립과 더불어 제도적 연구를 통해 보존 지역 지정과 활용 등의 구체적 관리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구의 지속 가능한 관리·활용 방안에 대해 서 교수는 '평대리 모델' 구축을 제시했다.
모래언덕 옆에 집을 짓는 등 사구와 더불어 사는 평대리 마을은 해안과 독특한 마을 자체 등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요소들이 많으며, 마을 규모도 작아 적절한 사구 관련 사업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평대 주민들의 마을 내 사구에 대한 보존 의식이 높다.
서 전 교수는 "평대 해안 옹벽을 없애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 자연스럽게 모래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평대 해안도로 일부 구간을 잠시 통제해 모래 이동 모습을 볼거리로 육성하고 곳곳에 사구에 대한 설명과 참여 공간을 만들면 색다른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가능하면 해안도로 부근 건물을 필로티 구조로 개조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 모래 이동에 따른 주민 피해도 줄이고 모래 이동 통로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 해안의 모래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1990년대 해안도로가 조성되고 주민 거주지가 확대되면서 현재는 모래 이동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상황을 사구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대안으로 전환해 나가자는 의미다.
또 양 사무처장은 "신양사구와 사계사구는 화산쇄설층 위에 조성돼 지질적으로 독특하고 사구가 잘 보존돼 있으며, 식생 또한 풍부하다"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구 보호 활동과 각종 인식 개선 사업을 이어가면서 궁극적으로 신양 및 사계 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윤희 제주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국장은 "사구의 보호지역 지정을 위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며 "사구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농경지 등의 주민 이용 행위를 보장해 주민들과 함께 사구를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날 간담회에서는 사구에서 배우고 여행하는 '런케이션' 활동, 사구 거점 시설인 사구 센터 신축 등이 제시됐다.
실제로 충남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많은 학생이 사구 견학 겸 관광을 오고 있으며 사구 센터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서 전 교수는 "지금 해안의 침식이 매우 심하고 부두 건설로 바다 에너지가 바뀌고 있다. 요즘같이 기후변화로 파랑의 에너지가 더 커진 시대에는 약간의 인위적인 교란만으로도 훨씬 파급력이 큰 피해가 육상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적어도 안전을 위해서라도 기후변화 시대에 할 수 있는 부분은 해야 한다. 대부분 시설이 바닷가에 집중된 현 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환경공익기금위원회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kos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