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처음으로 밟는 아시아 무대. 모두의 시선이 쏠린 중압감이 짓누르는 승부임에도 과감한 로테이션을 택했고, 역전승이라는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창단 처음으로 나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첫판에서 상하이 선화(중국)를 꺾은 강원FC 정경호 감독의 '뚝심 리더십'이 눈길을 끈다. 앞선 K리그1과 180도 달라진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오고, 무수한 찬스를 놓친 뒤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해도 먹구름이 끼었다. 그러나 과감한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동점골,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상하이 선화는 현재 중국슈퍼리그에서 선두 청두 룽청을 승점 3점차로 추격 중인 팀. 1995년 이후 30년 만에 1부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9월 A매치 휴식기를 전후해 부진한 경기력에 그치면서 일각에선 레오니트 슬루츠키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돌고 있다. 슬루츠키 감독에겐 강원전은 반드시 잡아야 했을 승부다. 로테이션을 택했지만, '한 수 위'라는 자신감이 깔린 선택이었다.
이런 상하이 선화를 상대로 정 감독은 '선발 전원 교체'를 선택했다. 지난 13일 FC서울과의 K리그1 29라운드에서 3대2 승리를 만들었던 주전급 선수들을 벤치에 앉히고, 백업 요원 위주의 스쿼드를 구성했다. 리그 상하위 스플릿 경계에 서 있는 가운데 체력부담이 큰 ACLE까지 치러야 하는 정 감독의 고민이 엿보이는 선택이었다. 보기 좋게 역전승을 만들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했지만, 실패의 책임을 모두 안을 수도 있었다.
정 감독은 경기 후 "사실 베스트 멤버 구성도 고려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경기를 준비하면서 기존 주전을 활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리그와 ACLE를 이원화 하겠다고 선수들에게 미리 약속해놓았다"며 "상하이 선화전만 기다리며 잘 준비한 선수들을 내 욕심 때문에 바꾸는 건 아니라고 봤다. 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려 했고, (결과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지려 했다"고 밝혔다. 이날 선발로 나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맨 오브 더 매치(MOM)에 선정된 구본철은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후반 교체 승부수도 적중했다. 최병찬이 후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 태클로 발목을 다쳐 실려 나왔다. 이 시점에서 정 감독은 교체 카드 1장이 아닌 3장을 동시에 쓰는 쪽을 택했다. 교체 직후 상하이 선화 수비진이 어수선한 틈을 타 동점골을 만들었고,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가 10분 만에 역전골까지 만들어냈다. 정 감독은 "후반 어느 시점에 변화를 주는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올해가 정식 사령탑 데뷔 시즌이다. 하지만 경력을 보면 '초보' 딱지를 붙이기 힘든 '준비된 지도자'다. 2014년 울산대 코치를 시작으로 성남FC 2군 코치와 수석코치, 감독 대행을 거쳤고, 상주 상무에서도 코치 생활을 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윤정환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 밑에서 수석 코치 생활을 했다. '초보 감독'임에도 과감한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런 풍부한 지도 경험에 기인한다.
K리그1과 ACLE는 소위 '노는 물'이 다르다. 서로를 잘 알고 전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K리그1과 달리 ACLE는 아시아 각 리그 강팀들이 자웅을 겨루는 클라이맥스다. 전통 뿐만 아니라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성공을 바라보기 힘든 무대. 지난 시즌 시민구단 광주FC가 8강까지 올라간 게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다. 정 감독은 "리그와 병행해야 하는 부분을 최대한 영리하게 풀어보겠다. K리그1에서 파이널A에 진입하는 게 우선이다. ACLE에서도 광주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의 색깔과 도전정신을 발휘해 우리 팀을 알리는 계기로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제 ACLE 첫 승을 한 만큼 최대한 빨리 두 번째 승리를 하는 게 목표다. 지금은 ACLE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기 보다, 한 경기씩 잘 치르는 데 초점을 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초보의 향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 감독이다.
춘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