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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못볼지도] '오도독' 바다향 터지는 창원 미더덕 고수온에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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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씹으면 오도독 터지는 미더덕.
'맛 스위치'를 켜는 듯한 독특한 식감과 바다 향을 가득 머금은 풍미가 음식 맛을 살려 찜과 된장찌개 등 각종 요리에 쓰이는 만능 식재료다.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물질 등도 함유돼 건강에도 좋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인 이 미더덕의 주산지는 경남 창원이다.
전국 생산량 70% 이상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앞바다(진동만)에서 생산된다.
연간 생산량은 약 3천t에 달한다.
맛과 향도 훌륭해 서울 경매시장과 인터넷 쇼핑몰 등을 통해 전국에 유통된다.
그러나 최근 창원산 미더덕 생산량이 급격히 줄면서 어민들 한숨은 깊어만 간다.
매년 봄 제철을 맞아 열리는 축제가 올해는 미더덕이 없어 취소됐고, 최근 어업인이 모여 만든 단체에서 손질한 연간 가공 미더덕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고수온 등으로 바뀐 바닷속 사정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 미더덕 없어 축제 취소…어업인 단체 위탁판매도 급감
"미더덕이 없어 매년 하던 축제도 못 할 정도니까 정말 힘듭니다."
최윤덕 미더덕영어조합법인 대표는 20일 연합뉴스에 이같이 말했다.
이 법인은 진동면 미더덕 어업인이 모여 만든 단체다. 현재 어업인 6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미더덕 생산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축제를 열려면 손질하지 않은 미더덕이 필요한데 올해는 그마저도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축제뿐 아니라 요즘 미더덕 생산량으로는 수익 창출 자체가 어려워 어민들 고통이 무척 크다"고 덧붙였다.

미더덕 제철인 매년 봄이면 진동면에서는 '마산진동미더덕축제'가 열린다.
1999년 양식품종으로 지정된 미더덕이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으면서 상품 홍보와 판매를 촉진하기 2005년부터 축제가 시작됐다.
축제 기간 30만명가량 방문객이 다녀가며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줬지만,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축제를 열려면 생물 미더덕을 20t 정도 공급해야 하지만 미더덕이 폐사하거나 자라지 못하면서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축제가 코로나 팬데믹이나 마비성 패류독소 확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열렸던 걸 고려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생산량 급감은 축제 취소뿐 아니라 어업인 단체에서 가공해 위탁 판매하는 미더덕 양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미더덕영어조합법인은 2020년 소속 어업인들에게 진동만 미더덕 약 23.8t을 받아 가공한 뒤 위탁 판매했다.
2021년에는 약 31.9t으로 일부 늘었으나 고수온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2022년 약 15t, 2023년 약 9.5t, 2024년 약 6.3t 등 해를 거듭할수록 양이 줄었다.
올해 봄 미더덕 위탁 판매량은 약 1t에 그쳤다.

◇ 고수온·물 용존 산소 부족 원인…실험 결과서도 입증
최근 미더덕 생산량 급감에 대해 어업인들은 고수온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미더덕이 잘 자라기 위해선 20도 이하 적정 수온이 유지돼야 하지만, 여름철 수온이 30도에 육박해 바다 아래 그물에 부착된 유생(幼生·어린 것)이 죽거나 크질 못하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환경생물학회지에 실린 학술논문 '수온과 용존산소 변화에 따른 미더덕 Styela clava의 생존율 및 생리적 반응'에 따르면 수온별로 진동만 미더덕 양식장에서 채취한 미더덕을 6일 동안 관찰한 결과 생존율이 23도에서는 63.3%, 26도에서는 56.6%로 줄어들었다.
29도에서는 6일째에 미더덕이 모두 폐사했다.
여름철 고수온이 이어지면 이듬해 봄에 채취하는 미더덕 양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이외에 수온 상승과 용존산소 농도 감소에 따른 미더덕의 새낭(호흡기관), 소화관·피낭(외피)을 병리 조직학적으로 관찰한 결과 미더덕 각 기관을 구성하고 있는 상피세포층의 증식, 응축·괴사, 섬모 탈락 등의 변성이 비교군에서 공통 확인됐다.
이는 수온이 오르고 물에 산소 농도가 줄어들면 미더덕 내부장기와 껍질이 쪼그라들고, 괴사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실험에 따르면 미더덕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수온은 약 24도, 용존산소 농도는 1ℓ당 약 3.8㎎이다.
바다에 고수온과 산소부족 물 덩어리(빈산소수괴)가 함께 발생하면 미더덕 양식에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산소부족 물 덩어리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용존산소 농도가 1ℓ당 3㎎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실제 지난해 진동만 해역에서는 고수온과 함께 산소부족 물 덩어리가 함께 발생해 미더덕 생육을 방해하면서 올해 봄 수확 철 폐사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 "유생 단계부터 정밀 모니터링·수심 조절 등 대응체계 필요"
바닷속 환경 변화로 미더덕 생산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문가는 선제 대응과 정밀한 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적정 수온에서 불과 몇 도만 올라가도 생존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미더덕 특성상 한번 폐사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한발 앞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남동해수산연구소 소속 이상준 연구사는 "미더덕 양식이 자연적인 상태에서 종자 붙이기(채묘)에 의존해 진행되는 만큼 유생 발생 시기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생육 부진 요인을 줄이는 현장관리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고수온이나 산소부족 물 덩어리 발생 시 그물 수심 조절 등 폐사 대응 조치를 신속히 이행할 수 있는 체계와 채묘에 활용될 어미 개체군의 보호·관리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창원시는 어장 환경 개선과 오염퇴적물 처리, 양식 어장 재조정 등을 위해 진동면 해역에서 '제2차 청정어장 재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패류 양식장이 많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앞서 시는 2022년∼2023년 진동면 고현 해역 약 500㏊에서 폐기물 1천501t을 수거했다.
창원시는 사업으로 미더덕 등 폐사 피해를 겪고 있는 진동만 일대 해양환경이 좋아져 어업인들 생산력이 증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jjh2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