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원태인 때문에 핑계도 못 대겠네.
메이저리그든, KBO리그든 프로 무대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발투수라면 자신의 루틴대로 수일 걸려 경기를 준비해야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은 그 루틴에 더 민감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 KBO리그 포스트시즌은 비라는 변수가 선수들을 지배하고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1번, 준플레이오프 1번 벌써 2번이나 경기가 취소됐다. 취소만 되면 다행. 경기 전 비가 쏟아져 지연 개시가 되기 일쑤다. 경기 시간에 맞춰 땀을 내고 몸을 풀어놨는데, 갑자기 30~40분을 쉬어야 한다면 투수에게는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모든 리듬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2경기 모두 지연 개시였다. 13일 열린 삼성과 SSG 랜더스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도 1회초 끝나자마자 폭우가 쏟아져 또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은 삼성 원태인과 NC 로건의 선발 맞대결이었는데, 로건이 1회 4개의 볼넷을 내주는 난조를 보이다 2회부터 영점을 잡아 치열한 경기가 됐었다. 당시 NC 이호준 감독은 로건에 대해 "비로 경기 시간이 밀리며, 로건의 리듬이 1회 흔들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SSG 준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 앤더슨도 비슷한 처지였다. 안그래도 장염 이슈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숭용 감독은 "우천 중단으로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부진 원인을 짚었다.
문제는 이 선수 때문에 그것들이 다 핑계가 돼버린다는 점이다. 두 경기 모두 상대 선발은 삼성 '푸른피의 에이스' 원태인. 원태인은 NC전 6이닝 무실점, 삼성전 6⅔이닝 1실점 쾌투로 팀을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구해냈다. 원태인도 같은 환경이었기에, 힘든 건 똑같았을텐데 정신력인지 이런 상황을 이겨내는 기술이 있는 건지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보다 더 좋은 공을 뿌렸다.
원태인도 NC전 후 "몸을 다 풀어놓은 상태였는데, 경기 시작 10분 전 갑자기 지연이 돼 걱정이 많았다. 루틴이 다 깨졌다. 몸 풀기 전에 지연이 됐다면 큰 문제가 아닌데, 경기를 앞두고 몸을 2번 풀고 던진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뛰며 열을 내고, 캐치볼 하고 했다. 핑계대지 않으려 최대한 집중했다"고 밝혔었다.
결국 간절함, 집중력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