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기간 숨은 주역은 세계인의 시선을 끈 한국 음식과 화장품이었다.
한국을 찾은 각국 정상과 관계자, 기업인, 그리고 이들의 배우자들은 행사장 곳곳에서 K뷰티를 직접 체험했고 K푸드트럭 앞에는 외신 기자 등 세계에서 몰려든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한국식 치킨과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것)을 즐겨 '치맥'(치킨과 맥주)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다.
◇ 캡쳐해온 제품 보여주며 "이거 주세요"…IMF 총재도 K뷰티관 '발길'
K뷰티 유통을 대표하는 올리브영과 대표 K뷰티 브랜드들은 APEC 덕분에 활짝 웃었다.
가장 화제를 모은 건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올리브영 쇼핑 인증샷이다.
경주 황리단길의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구입한 레빗 대변인은 인스타그램에 "한국에서 산 스킨케어 제품"이라며 마스크팩과 클렌징 제품, 립밤 등 13개 국내 브랜드 화장품 사진과 함께 하트 이모티콘을 게시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배우자 다이애나 카니 여사는 이재명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를 만나 "딸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특히 K화장품을 갖고 싶어 해서 올리브영에서 사 올 리스트를 받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미리 K뷰티 제품을 캡처한 화면을 점원에게 보여주며 제품을 찾았다고 올리브영은 전했다.
평시 20% 수준이던 경주황남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지난달 29일과 30일 모두 60%를 웃돌았다. 스프레이 세럼, 리프팅 크림 등 기초 화장품류가 인기 상품 상위권에 올랐다.
에이피알은 인기 미용기기 제품인 '부스터 프로'를 세계 각국 참가자들에게 제공해 시선을 끌었다.
APEC 기간 황룡원에도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기업들이 부스를 차린 'K뷰티 파빌리온'에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민간 국제 표준기구인 GS1 최고경영자(CEO)의 배우자 로랑스 드 바르부아, 미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교계 명사 니키 힐튼 등이 이곳을 찾았다.
각 부스는 거의 모든 시간대 예약이 다 찼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정부기관 관계자들도 방문했고, 뷰티 인플루언서 10여명이 함께 온 것도 목격됐다. APEC 회원국 정상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개별적으로 황룡원을 찾았다는 후문이다.
인공지능(AI) 기반 화장품 기술도 큰 호응을 얻었다.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 헤라의 립과 파운데이션을 AI 진단을 통해 체험하는 사람의 피부색에 맞게 현장에서 제작했고, 정샘물 뷰티는 눈동자 색과 피부톤, 얼굴형을 분석해 맞춤형 쿠션 종류를 제안하는 'AI 퍼스널(개인맞춤형) 컬러 측정' 서비스를 선보였다.
APEC 회원 정상과 배우자들에게 제공된 공식 선물도 K화장품이었다.
CJ올리브영이 스킨케어, 메이크업, 퍼스널 케어 등 K뷰티 주요 카테고리 상품 17종으로 구성한 K뷰티 패키지는 각 회원 정상에게 공식 선물로 제공됐다.
올리브영은 정상 선물 외에도 정부 대표단과 고위 관리, 기자단을 위한 K뷰티 기념품 약 8천세트도 협찬했다.
LG생활건강은 각국 정상 배우자를 위한 '국빈 세트' 20개를 준비해 최고급 크림인 '환유고'와 '환유 동안고'를 공식 협찬했다.
LG생활건강은 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 참석한 세계 주요 기업 CEO를 위한 선물로도 더후 환유고 54개를 제공했다.
◇ 젠슨 황 '치맥' 회동에 K치킨 주목…APEC 현장서 라면·떡볶이 등 인기
15년 만에 방한한 젠슨 황이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을 먹으면서 '소맥'으로 러브샷을 했을 때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목이 쏠렸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서 많은 이용자는 젠슨 황의 말에 동조하거나 한국 치킨이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행사에서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고 외치기도 했다.
식품·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2일 "젠슨 황이 한국 재계의 거물들과 '치맥 회동'을 한 장면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치킨은 한국의 대표적 K푸드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회동으로 CNN 등의 외신을 통해 치킨과 맥주의 합성어인 '치맥'(chimaek)이란 용어까지 알려졌다.
K치킨이 대중적인 K푸드라면 지난달 31일 열린 APEC 정상 만찬에서는 품격 있는 한식이 주인공이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단감과 잣 소스를 곁들인 게살 샐러드, 전복과 조랭이떡을 곁들인 경주 한우 갈비찜, 나물 비빔밥, 된장 캐러멜 인절미 등 담백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한 메뉴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APEC 정상 만찬의 건배주는 배혜정도가의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였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의 국제미디어센터 맞은편 K푸드 스테이션의 푸드트럭 10여대에 한국 음식을 맛보려는 해외 언론인이나 관계자의 줄이 이어졌다.
공식 협찬사인 식품기업들은 라면, 떡볶이, 치킨, 돼지곰탕 등 다양한 한식을 선보였다.
농심 부스에서는 매일 약 300명이 신라면을 맛봤다.
교촌치킨은 간장순살, 허니순살 등 매일 1천100∼1천200인분의 치킨을 제공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K-디저트 부스와 해양수산부의 케이피쉬(K·FISH) 푸드트럭에서는 호떡·약과와 김스낵, 다시마부각칩, 어묵바를 내놨다.
CJ제일제당은 행사 참가자 숙소와 미디어센터에 비비고 컵 떡볶이, 김스낵, 햇반 컵반 등 2만개 제품을 비치해 참가자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파리바게뜨는 3만2천개 제품을 제공했는데 한국 전통 식재료를 재해석한 '곶감 파운드', '약과 티그레', '쑥떡 쿠키'의 반응이 좋았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APEC을 계기로 K푸드의 위상은 한층 올라갔다는 평이 나온다.
캐나다 총리 부인 카니 여사는 경주에서 한식을 맛본 소감을 전하면서 "요새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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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