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NC 박석민, kt 유한준은 팀을 옮긴 직후 황금 장갑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돈의 논리에 따라 선수들의 이동폭이 컸던 만큼 내년 시즌에는 팀간 정상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돈 쓴 구단이 많았으니 이렇게 되면 절대강자가 없는 것 아닌가요?"
FA 시장이 마무리돼 가던 12월 초 한 구단 관계자의 기대반 걱정반의 한마디였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 논란과 전력 평준화가 그것이다.
22명의 FA 가운데 계약이 완료된 19명의 몸값 총액은 723억2000만원에 이른다. 역대 FA시장 최고액이었던 지난해 630억1000만원을 가볍게 경신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현수가 만약 원 소속팀 두산에 잔류한다면 이 금액은 800억원을 훌쩍 넘는다. FA 계약 축소 발표 의혹을 차치하더라도 이미 구단들의 재정은 FA 시장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구단이 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고는 있는 현실에서 FA 시장은 눈치보기와 사전(事前) 및 물밑 거래에 따라 거품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합리성과 수익 논리를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내년 스토브리그는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제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FA에 대한 구단들의 행태가 달라지기는 힘들다. 내년 FA 시장도 김광현 양현종 우규민 차우찬 최형우 등 굵직한 대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역시 평생에 한 번뿐일 수도 있는 FA 기회를 잔뜩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제일기획에 편입돼 재정 자립형 구단으로의 탈바꿈을 선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삼성 구단은 앞으로 그룹의 지원이 아닌 자체 마케팅을 통한 수익을 통해 운영되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외부 FA와의 접촉을 끊고 박석민조차도 잡지 않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무분별한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로 향후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수익 창출 가능성과 선수 몸값의 관계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해 전력을 꾸려가는 이른바 메이저리그식 시스템을 갖춰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성적을 포기한 채 수익성만 따지겠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시간을 두고 조금씩 수익과 지출 구조를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돈의 논리에 따라 선수들의 이동폭이 크기는 했지만, 그만큼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비쳐진다. 당장 내년 시즌 우승 후보를 꼽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올해 정규시즌까지만 해도 삼성이 절대 강자로 리그를 호령했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주요 투수들의 도박 파문이 일면서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었다. 준우승에 그친 삼성은 이번 스토브리그서 별다른 전력 보강에 나서지 않았다. 그래도 "삼성은 삼성 아니겠는가"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삼성이 전력상 크게 '위축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절대 강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NC, 롯데, 한화를 우승 후보로 보는 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 세 팀은 이번 스토브리그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대폭적인 전력 보강을 이뤄냈다. NC는 9개 수비 포지션 가운데 가장 약하다고 판단됐던 3루수를 박석민이라는 거포로 채움으로써 창단 후 끊임없이 진행해 온 전력보강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나성범-테임즈-박석민으로 이어지는 NC 중심타선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 파워를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롯데는 최근 몇 년 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불펜진을 일약 최정상급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마무리 손승락, 셋업맨 윤길현 조합만 가지고도 정상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전략을 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교함과 파워를 고루 갖춘 롯데 타선은 따로 손질할 필요가 없었다. 린드블럼과 레일리, 송승준이 잔류한 선발진 또한 페넌트레이스를 든든히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화는 이번에도 지갑을 크게 열었다. 핵심은 마무리 정우람을 거머쥐고 에이스인 로저스를 주저앉혔다는 것이다. 에이스가 없었던 한화 선발진은 한층 안정감을 띨 것으로 보이며, 정우람은 권 혁 박정진이 이끌던 불펜에 질과 양에서 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와 4번타자 김태균에 김경언 최진행 등 만만치 않은 타자들을 보유한 한화만큼 투타 밸런스를 찾은 팀도 사실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솔직히 그렇게 돈을 쓰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왔는데 우승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아니냐"며 한화를 우승후보로 찍기도 했다.
여기에 디펜딩챔피언 두산은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다양하고 두터운 선수층에 경험과 자신감까지 붙었기 때문이다. SK는 정우람과 윤길현을 빼앗겼지만, 풍부한 내부자원을 잘 엮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심산이다. 부상자만 잘 관리한다면 SK 역시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이다. 최정상급 선발진을 꾸린 KIA 역시 재기의 힘을 마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적어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여럿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이번 스토브리그의 중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