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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나이는 송승준 형(41) 다음이지만, 난 야구를 더 오래 하고 싶다. 친구 (노)경은(37)이랑 같이 45세까지 야구하는 게 꿈이다."
"코로나19 여파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연봉협상이 따뜻했다. 팀에 대한 기여도를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
지난해 김대우의 연봉은 2900만원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9년까지 '투수' 김대우의 1군 커리어는 고작 9경기(선발 3경기) 12⅔이닝,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15.63이 전부였다.
다만 '투수' 김대우의 커리어엔 통산 4패뿐, 아직 '승리 공헌' 기록이 없다. 승리, 세이브, 홀드 모두 0이다. 하지만 김대우는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와서 내가 200승을 하겠나, 300세이브를 하겠나"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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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은이의 롱런 비결을 배우려고 같이 채식을 해봤는데, 한달 만에 그만뒀다. 난 그냥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게 건강 관리다."
고교야구 스타였던 김대우는 2003년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하고, 롯데의 계약금이 마음에 차지 않자 '해외 진출 보장'을 조건으로 고려대 입학을 택했다. 하지만 재학 2년만의 입대로 양승호 당시 고려대 감독과 사이가 틀어졌다. 뒤이어 대만행. 김대우를 두고 한국과 대만, 양국 프로야구연맹 간 법적 분쟁으로 발전할 뻔했다.
어렵게 결정된 롯데 입단. '타자를 하라'는 구단의 권유를 거부하고 투수를 선택했다. 하지만 2009년 1군 데뷔전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첫 1경기 5타자 연속 볼넷의 불명예를 수립한 뒤 다시 2군행.
2012년 뒤늦게 타자로 전향해 6년을 뛰었지만, 통산 타율 2할1푼2리 7홈런 42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56에 그쳤다. 타자로나 투수로나 '2군 여포'의 면모를 벗지 못했다. 급기야 2019년에는 육성선수로 전환됐다.
그래도 롯데는 김대우를, 김대우는 야구공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2020년의 반전이 펼쳐졌다. 초고속카메라를 비롯한 롯데의 달라진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은퇴 위기의 노장을 극적으로 부활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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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만은 못해도 직구의 구위는 살아있다. 근력은 여전하다. 여기에 투심 컷패스트볼(커터) 슬라이더 서클체인지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익히고 있다. 김대우는 "(노)경은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빨리 빨리 익히는데, 난 그게 안되서 팔 각도로 변화를 준다"고 설명했다.
이제 김대우는 롯데의 우승을 꿈꾼다. 김대우가 데뷔한 이래 롯데는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후회해봤자 시간을 돌릴 순 없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음에 감사한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기회가 왔다. 아직 살아서 야구를 하고 있으니 영광이다. 가능하다면 롯데의 우승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부산=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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