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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모든 승리에는 숨은 요인이 있다.
마운드 위에 청년 에이스 원태인이 있었다면, 공격 루트의 선봉에는 '캡틴' 박해민(31)이 있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그는 8년 연속 20도루를 딱 하나 남겨두고 있었다. 달성하면 역대 6번째 대기록.
하지만 캡틴은 무리하지 않았다. 개인보다 팀 승리를 앞세웠다. 끊임 없는 스킵 동작으로 선발 신민혁을 괴롭혔다.
"8년 연속 20도루 기록도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가 20 도루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습니다.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집중하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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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민의 발야구는 0-0으로 맞선 3회말에 빛났다.
선두타자 안타로 출루한 그는 1사 후 구자욱의 타석 2구째 스타트를 끊었다. NC 배터리와 내야진이 대도의 발걸음에 잔뜩 신경쓰고 있던 상황. 박해민이 뛰자 견고하던 내야 대형이 흐트러졌다.
구자욱의 배트가 나왔다. 유격수 쪽 땅볼 타구. 2루로 들어가던 유격수 노진혁이 역모션에 걸렸다. 구자욱 특유의 역회전이 걸린 타구가 급히 타구 쪽으로 전환한 노진혁의 글러브를 외면했다. 좌중간으로 느리게 데굴데굴 굴러간 타구. 이미 시동을 건 박해민은 전광석화 처럼 3루에 안착했다. 1루까지 전력질주 했던 타자주자 구자욱도 타구가 외야로 빠진 사이 빠르게 2루를 점령했다.
박해민과 구자욱의 최선을 다한 주루 덕분에 병살 부담을 던 강민호가 컨택트 위주의 대처로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1사 만루. 또 한번 풀카운트 승부 끝 오재일의 빗맞은 땅볼 타구가 3루 라인선상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잡지 않았다면 라인 밖으로 나갈 타구. 3루 주자 박해민은 빠르게 홈으로 쇄도했다. 타자주자 오재일은 느린 발로도 죽어라 하고 1루로 달렸다. 그 모습에 신민혁의 마음이 급했다. 순간 판단미스로 공을 주워들고 1루로 뿌렸다. 간발의 차로 세이프. 선취점이자 결승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1사 만루. 곧바로 이원석의 중전 2타점 적시타가 터졌다. 팽팽하던 원태인-신민혁의 선발 맞대결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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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 전까지 박해민은 최근 6경기에서 22타수2안타(0.090)로 주춤했다. 3할을 넘던 타율도 2할대로 내려앉았다.
복잡한 생각이 스며들던 순간. 다시 단순해지기로 했다.
"최근 결과가 나오지 않아 타석에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오늘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편안하게 타석에 섰습니다. 첫 타석부터 시작이 좋았고, 다음 타석에서 운까지 따라줘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네요."
배트란 도구를 사용하는 타자의 삶. 끊임 없는 번뇌의 연속이다.
단,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 박해민의 주루 가치, 수비 가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박해민이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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