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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객관적으로 강한 전력은 아니지만 팀 분위기가 참 좋다.
모두가 간절히 대기록 달성을 기원했다. 대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를 둘러싼 불문율이 있다. 속칭 '설레발'로 불리는 김칫국 금지다. 미리 떠들면 산통이 깨진다. 본인한테는 말할 것도 없다.
벤치의 삼성 선수들도 입을 꾹 다물고 경기에만 초집중 했다. 모두가 백정현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당사자인 백정현이 행여 기록을 의식해 밸런스가 흐트러질까 노심초사했다.
"(퍼펙트 게임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실투도 많았고 안타성 타구도 많았는데 계속 야수들한테 잡히길래 3회부터 퍼펙트 생각을 하고 있었죠. 어릴 때부터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상황이 어색하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래서 더 공격적으로 던졌죠. 하지만 뒤로 갈수록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기록을 의식한 채로 8회 1사까지 퍼펙트 흐름을 이어간 셈. 대단한 마인드 컨트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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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일이라 그냥 여기서 후속 타자를 잡아서 이닝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황이 이랬으니 덕아웃 동료들의 행동이 얼마나 웃겼을까.
"동료들이 의식하는 것도 계속 느끼고 있었죠. 그 상황이 좀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말 안 걸려고 하고, 좀 없는 사람 취급하듯이 그렇게 움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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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긴장해 있던 김지찬(22)이 한번에 공을 잡지 못하고 떨어뜨렸다가 바로 다시 잡고 송구해 간발의 차로 타자주자를 잡아냈다. 덕아웃에서 뷰캐넌(34)과 함께 초집중 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청년 응원단장' 원태인(23). 김지찬이 공을 떨어뜨리는 순간 얼굴을 크게 찡그린 채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실책으로 기록이 중단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잡아 아웃이 되자 순간 일어선 자신이 머쓱해졌다. 옆에서 의연하게 지켜보던 '푸른 눈의 응원단장' 뷰캐넌은 '형님' 답게 결과 확인 없이 촐싹댄 원태인을 왼손으로 찰싹 때리며 자제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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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들이 압박감을 느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백정현은 평소 "야수가 실책을 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에러도 하지만 안타가 될 타구도 많이 잡아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선수. 만약 김지찬의 실책으로 기록이 깨졌다면 백정현보다 김지찬이 더 크게 상처받을 뻔 했다.
동료의 기록을 자신의 일처럼 지켜주고 싶었던 건 송준석과 이성규 처럼 그라운드에서 온 몸을 던진 선수들 뿐 아니라 원태인 뷰캐넌 처럼 덕아웃에서 응원을 하던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 한마음이었다.
강하지 않은 전력, 주축 선수들의 대거 부상 이탈에도 흔들릴지언정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삼성 라이온즈를 지탱하는 끈끈한 힘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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