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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능청 [부산 현장]

정재근 기자

기사입력 2023-06-08 14:47


'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3루주자 김상수가 유강남 포수의 견제구를 자제시키고 있다. 부산=정재근 기자

[부산=스포츠조선 정재근 기자] 비 오는 날 길 건너편 초등생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길을 건너려 하자, '위험하니 거기 그냥 있으라'는 손짓 후 본인이 직접 길을 건너가 사인을 해줬다는 전설의 연쇄사인마.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사인을 받아야 했다', '사인을 받은 게 아니라 사인을 당했다'는 팬서비스 미담의 최고봉. KT 위즈 김상수 얘기다.

그 김상수가 이번엔 경기 중 고군분투하는 상대 포수를 챙겼다. '챙겼다'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동료 내야수도 아닌 상대편 3루주자가 포수의 3루 송구 시도를 천연덕스럽게 자제시켰기 때문이다.

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중 벌어진 장면이다.

9회초 2-2 동점 상황. 롯데 마무리 김원중이 등판했다. 배정대의 2루 땅볼 아웃 후 김상수가 중전안타로 출루했다. 이후 장준원 타석에서 1루주자 김상수는 김원중의 원바운드볼을 포수 유강남이 떨어뜨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여유 있게 2루를 훔쳤다. 장준원의 1루땅볼 때 김상수가 3루까지 진루한 데 이어 황재균마저 4구로 출루하자 롯데 포수 유강남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9회초 김상수가 틈을 놓치지 않고 2루에 진루했다.
2사 1, 3루의 위기. 포크볼을 구사하는 김원중의 공을 뒤로 빠뜨리는 순간 곧바로 실점이다. 게다가 발 빠른 김상수와 1루주자의 이중 도루시도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 타자는 김민혁, 김원중의 2구째 포크볼을 유강남이 글러브로 막아냈다. 유강남은 3구도 포크볼을 요구했다. 블로킹 자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포크볼이 좌타자 몸쪽, 마운드 앞쪽에서 바운드 됐다. 유강남이 본능적으로 몸을 엎드리며 필사적으로 공을 막아냈다. 평범한 포수였다면 뒤로 빠뜨렸을 공이다.


'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해도 내가 해야 할 동작인데, 왜 상수형이?'
호시탐탐 홈을 노리고 있던 3루주자 김상수의 리드폭이 컸다. 공을 잡은 유강남이 곧바로 3루 송구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연쇄사인마' 김상수의 엉뚱하고도 배려심 깊은(?) 동작이 나왔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던 김상수가 유강남을 향해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송구 자제를 요구한 것. 던져봐야 아웃은 힘들고, 오히려 실책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송구를 받는 내야수들이 하는 동작이다. 했어도 3루수가 해야 할 동작을 3루 주자가 한다?

'어차피 아웃 안되는 데 넌 공 던지다 실수할 수 있고, 난 힘들게 귀루 슬라이딩까지 해야 하니 서로 무의미한 수고를 덜자'라는 김상수의 속 깊은 배려였을까. 김상수의 손동작을 본 유강남도 크게 웃었다. 5회초 무사 1, 2루에서 KT의 이중도루가 나왔고 유강남은 3루 악송구로 실점을 한 쓰라린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다.

공을 향해 몸을 던진 유강남의 고군분투 덕에 김상수는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김상수의 활약은 눈부셨다. 5회부터 대타로 나온 김상수는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3출루에 성공했다. 특히 유격수 수비에서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폼'을 보여주며 여러 차례 어려운 타구를 범타로 처리했다.


'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6회말 1사 전준우의 타구를 호수비로 처리하는 유격수 김상수.

'연쇄사인마의 친절한 오지랖인가?' 상대 포수 견제구 자제시킨 3루주자의…
전성기의 폼 그대로
올 시즌을 앞두고 4년 29억원의 FA계약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김상수는 전성기를 뛰어 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50경기를 치른 현재, 168타수 51안타 19타점 타율 0.304를 기록 중이다. 2009년 삼성 입단 이후 3할을 넘긴 시즌이 2020시즌 단 1번뿐이고, 지난 시즌 삼성에서 72경기 출전에 타율 0.251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박경수가 2015년 LG에서 KT로 팀을 옮긴 후 선수 인생 2막을 연 것처럼 김상수도 마법사 군단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회춘의 묘약이 있는 KT 더그아웃이라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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