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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결과는 상관 없다, 우리 시대의 낭만 야구[대전 리포트]

최종수정 2025-07-27 11:07

"긴장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결과는 상관 없다, 우리 시대의 낭만 야구…
김광현. 사진=SSG 랜더스

[대전=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류현진과 김광현의 사상 첫 선발 맞대결이 펼쳐진 26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순위 결정전이나 포스트시즌만큼 많은 취재진이 대전에 몰렸다.

대한민국 최고 좌완.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맞대결이 성사되지 못했을까. 류현진은 2006년 KBO리그에 데뷔했고, 김광현은 2007년 데뷔했다. 1년 차이로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가기 전까지, 두 특급 좌완은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였고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류현진이 38세, 김광현이 37세가 된 지금에서야 마침내 맞대결이 성사됐다.

류현진이 미국에 가기전, 기회는 있었다. 많은 비가 일찌감치 예보돼 있었던 2010년의 대결 무산 외에도, 선발 맞대결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다. 양팀 모두에게 워낙 비중이 큰 투수들이라 맞대결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예측과 당시의 팀 상황이나 선수의 컨디션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 그만큼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빅매치'였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30대 중후반이 돼서야 한 경기에서 만난 류현진과 김광현. 류현진과 1987년생 동갑이자, 김광현과 SK 와이번스(현 SSG) 시절부터 오랜 시간 한솥밥을 먹었던 한화 포수 이재원은 "이제서야 맞대결을 하게 된 게 아쉽다"고 했다. 이재원은 "두사람 모두 전성기였을때 맞붙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 늦게 성사가 된 것 같다"고 연신 아쉬움을 표했다. 20대 최전성기에 승부를 겨뤘다면, 선동열-최동원 못지 않은 최고의 명승부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아쉬움이다.


"긴장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결과는 상관 없다, 우리 시대의 낭만 야구…
26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 6회말 2사 3루 SSG 선발 김광현이 땅볼로 위기에서 탈출한 뒤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팬들의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날 한화생명 볼파크는 1만7000석 전석 매진을 기록했는데, 현장 판매분 티켓을 구하려는 줄이 평소보다 훨씬 더 길었다. 레전드 투수들의 대결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싶은 마음이 이른 아침부터 많은 팬들의 긴 행렬로 표현됐다. 이제는 전성기를 지난 투수들이지만 이들이 품고 있는 상징성에 대한 팬들의 존중과 예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이날 야구장을 찾았다. 평소에도 야구단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있고, 올 시즌 여러 차례 야구장을 찾았지만 1위팀 구단주의 방문 역시 '류김대전'이라는 특별한 매치업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후반기 시작 직후 우천 취소 경기가 나오면서 로테이션이 조정됐고, 두사람의 맞대결이 성사된 직후부터 이숭용 SSG 감독은 "로테이션을 바꿀 이유는 없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대로 간다"면서도 내심 "아마 본인(김광현)은 조금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둘 다 멋진 승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괜히 선발 매치업에 많은 이목이 쏠려 선수가 부담을 느끼는 상황을 원치않을 수 있지만, 상징성이 큰 선수들에 대한 야구 선배로서의 격려다.


"긴장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결과는 상관 없다, 우리 시대의 낭만 야구…
26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9-3 승리를 거둔 SSG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25.7.26연합뉴스
김경문 한화 감독 또한 마찬가지. 김 감독은 26일 경기를 앞두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고 똑같은 경기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평정심을 강조하면서도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며 미소지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김경문 감독. 그리고 그때 대표팀의 '특급 원투펀치'가 바로 류현진과 김광현이었다. '일본 킬러' 김광현의 활약과 '결승전 호투'를 펼친 류현진이 있었기에 전승 우승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 김경문 감독에게도 최고의 영광을 안겼던 순간. 김 감독은 "2008년도 이 두 친구들의 활약 덕분에 제가 여태까지 감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마움과 애틋한 마음을 슬쩍 드러냈다.


"긴장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결과는 상관 없다, 우리 시대의 낭만 야구…
사진=SSG 랜더스
이날 두 선수가 펼친 세기의 맞대결은 김광현의 승리로 끝났다. 류현진이 1회 예상 밖 난조를 보이면서 1이닝 4안타 2볼넷 5실점 후 강판됐고, 김광현은 6이닝 2안타 3탈삼진 1볼넷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와 선발승에 성공했다. 경기는 SSG의 9대2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결과는 둘째 문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건재한 두 위대한 스타의 낭만이 그라운드에 남아있다.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채로 등판을 준비했던 김광현. 경기 후 김광현은 "현진이 형은 저에게 진짜 우상이자 대투수고, 항상 따라가야 하고 위를 올려다보는 투수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서로 좋은 컨디션에서 최고의 피칭을 한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전=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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