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올해 끝나고 진짜 야구를 안 할까 생각했어요."
KIA 타이거즈 외야수 박정우는 올해 스프링캠프까지 주전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당시 이범호 KIA 감독은 나성범을 풀타임 우익수로 쓰기는 어렵다고 판단, 4번 외야수 찾기에 공을 들였다. 좌익수 해럴드 카스트로-중견수 김호령-우익수 나성범으로 기본 구상은 하되 나성범이 지명타자로 뛸 때 빈자리를 대신할 외야수가 필요했다.
스프링캠프까지 박정우는 1순위로 평가받았지만, 냉정히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박정우가 주춤한 사이 박재현이 등장해 박정우를 밀어냈고, 지난달에는 신인 외야수 김민규가 등장해 대주자로 가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박정우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박정우는 2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 9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4타수 3안타 2타점 1도루 맹활약이었다. 3안타와 2타점 모두 개인 한 경기 최다 기록이다.
박정우는 두산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에이스 곽빈에게 안타 2개를 빼앗고, 마무리투수 이영하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치며 펄펄 날았다. KIA의 2대3 패배로 묻혔지만, 이 감독에게는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 감독은 "안타가 많이 안 나왔는데, (박)정우가 잘 쳐줘서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다. (박)재현이나 (김)호령이 (나)성범이가 쉬어야 할 타이밍에 정우를 써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우한테는 어제(26일) 경기가 아마 좋은 경기였을 것 같다. 수비도 주루도 잘하는 친구고, 센스도 있는 친구다. 우투수가 던질 때 곽빈 정도 레벨의 투수 공을 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충분히 경기에 나가서 잘할 수 있는 것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당분간 기회가 되면 써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 감독은 이어 "캠프 때는 외야 한 자리가 비어 있었기에 본인이 충분히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초반에 하다가 재현이가 주전으로 경기를 나가다 보니까 좀 충격도 있었던 것 같다. 한번씩 불러서 이야기를 한다. '재현이가 나가고 민규 막 뛰어다니고 이러니까 심리적으로 괜찮냐'고 하니까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다. 팀이 먼저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 그 말 듣고 이 친구도 많이 성장했고,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 자리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같이 중요한 경기 중요한 상황에 나가서 그런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안 쓸 이유가 없으니까. 외야에서 조금 힘든 선수가 있으면 정우를 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우는 덕수고를 졸업하고 2017년 KIA에 입단해 벌써 10년차가 됐다. 지난해 SNS에 팬이 남긴 욕설에 욱한 나머지 같이 욕설로 맞대응하다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는 등 '악동'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다. 박정우는 주전 경쟁과 별개로 더그아웃에서 박재현과 김민규를 가장 잘 챙기는 선수다.
박정우는 "사실 나도 올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올해 끝나고 진짜 야구를 안 할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10년 동안 한 게 없고,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래서. 딱 후회 없이 해보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1군에 있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나도 원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런 욕심이 더 나더라. 나도 경기에 많이 뛰고 싶긴 한데, 많이 못 나가니까 밀렸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민규랑 (한)승연이 재현이가 워낙 잘하니까. 그래서 올해는 진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하고 있었는데 어제는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3안타 활약에 만족은 없었다.
박정우는 "아직 멀었다. 반짝이다. 어제는 투수들이 나를 분석도 안 했을 것이고, 그냥 왜소하니까 직구로 빨리 아웃시키려고 생각한 결과라고 본다. 사실 나도 솔직히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넘버원 투수고, 마무리도 상위권 레벨 투수인데. 아마 누구도 내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조차도 마지막 타석에서 '또 욕먹겠구나'라고만 생각했다. 2아웃 만루에서 못 치면 욕먹는 것 아닌가. 어차피 내게는 직구만 던질 게 뻔한데, 나랑 쉽게 쉽게 승부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직구만 보고 쳤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더그아웃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올해, 박정우는 후배들을 위해 그 시간을 쓴다.
박정우는 "감독님께서 대전에서 한번 부르셔서 '중요할 때 언젠가 나가게 되면 잘될 것'이라고 말을 많이 해 주셨다. 내가 그래서 막 숙이고 다니면 안 되겠더라. 후배들이 보고 배울까 봐. 민규도 실수하면 뭔가 내 꼴 날까 봐, 실수 많이 하는 선수 될까 봐. 벤치에 있으면 생각이 바뀌더라. 애들이 나처럼 되면 안 되지 않나. 왜냐하면 얘네들은 어리고, 한번 실수하면 '진짜 2군 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들 하니까. 그러면 내가 '너 없이도 팀 잘 돌아간다. 제가 실수해도 금방 잊히니까 너도 빨리 잊고 해라'라고 이야기한다. 진짜 나 같은 사람이 안 됐으면 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박정우는 올해 57경기에서 47타석밖에 서지 못했다. 한 타석 한 타석이 귀하다. 그럼에도 타율 3할1푼6리를 기록하고 있다.
박정우는 "그냥 나가면 무조건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간다. 한번 못 치면 또 한동안 못 나가니까. 어떻게든 나가려고 공에 맞으려고도 하고. 그냥 공 보고 공 치기 하려고 한다. 어차피 투수들이 나를 잘 모르고 분석이 잘 안 되어 있으니까. 나는 남들이 한번 쉴 때 한번 나가서 안타 2개를 쳐야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또 못하면 욕을 많이 먹을 테니까"라고 이야기했다.
전반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좀 바뀌었을까. 박정우는 여전히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 대신 유쾌하게.
"딱 진짜 후회 없이 하고 싶어요. 솔직히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진짜 이 생각 하는지 엄마 아빠도 몰라요. 아쉽지 않냐고요? 내 운명이죠.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내 운명이죠. 근데 또 포기하려고 할 때쯤 또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나도 한번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심정으로 해야 주눅 들고 그런 플레이가 안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차피 그만둘 건데'라는 마음으로 하면 더 잘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올해는 또 수비나 주루에서 사고도 안 쳤더라고요."
잠실=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

